만화는 아릿한 여운 뮤지컬은 팽팽한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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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02면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오픈 런, 서울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문의: 02-338-6685 

무대는 단출하다. 산동네를 연상시키는 듯한 외진 골목길. 사실 원작에서도 배경은 언제나 허름한 판자촌이었다. 그게 무대로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세트 이동도, 변화도 거의 없다. 그러나 작품은 빠르게 진전돼 간다.

창작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연출가 박근형의 명성을 재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청춘예찬’ ‘선착장에서’ ‘경숙이, 경숙 아버지’ 등으로 연극에선 이미 자기 위치를 확고히 했지만, 그로서도 뮤지컬은 낯선 장르다. 이번이 생애 두 번째 뮤지컬 연출이다. 그러나 어차피 같은 무대요, 같은 빈 공간 아니었던가. 드라마를 쥐락펴락하며 사실적인 대사와 팽팽한 긴장감으로 극을 이끄는 솜씨는 박근형다웠다.

강도하의 원작 ‘위대한 캣츠비’는 엠파스와 다음에 연재된 만화다. 지면 제한이 없는 인터넷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한 강도하는 생략과 절제의 화법을 통해 서정성을 불어넣었다. 한 페이지에 나비 한 마리만을 달랑 그렸건만, 독자의 가슴엔 그 이상의 감수성이 털썩 내려앉았다. 이처럼 만화가 ‘여운의 미학’이라면, 이를 무대로 옮겨놓은 뮤지컬은 ‘스피드’로 승부수를 던졌다. 작품은 좀처럼 암전(暗轉)이 없이 숨 가쁘게 달려간다. 왼편에서 페르수와 부르독의 미온적인 결혼 장면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오른쪽에선 캣츠비와 하운두의 치고받는 말싸움이 연결된다. 그러다 두 그룹은 자연스럽게 무대 중앙에서 조우한다. 공간을 훌쩍 뛰어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이음매는 무대 예술이 과연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곤 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원작과 달리, 뮤지컬은 시간에 따라 진행된다. 대학생시절 처음 만나 알게 된 하운두와 페르수, 그리고 캣츠비. 6년간의 사귐을 내동댕이쳐버린 채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쫓듯’ 이혼남과 전격 결혼하는 페르수 때문에 캣츠비는 아파한다. 그 앞에 새롭게 나타난 ‘C급 여인’ 선. 그 와중에 몽영감-몽부인의 계략에 넘어간 하운두는 또 다른 사랑 때문에 허우적거린다. 극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의 핵심만을 따라가지만 겉돌기보단 중심을 꽉 잡은 채 안정감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근본적인 문제는 극적 반전에 있다.

6년간 자기의 속마음을 꽁꽁 숨겨온 하운두가 왜 갑자기 본심을 드러내는지 관객은 어리둥절하다. 하운두가 6년 전 페르수를 놓아버린 이유도 설득력이 약하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 울부짖듯 격렬하게 부르는 주인공들의 아리아는 메아리 없이 공허하게 무대를 겉돈다. 원작을 그대로 따라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작의 숨겨진 코드를 새롭게 재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수많은 장점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아직 위대하지 못한 채 ‘절반의 성공’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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