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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관직 흥정인가/최철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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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의 어느 경제학자가 범죄행위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한 일이 있다. 범죄가 성공하면 꽤 이득을 볼 것이다. 실패하면 피해자에 대한 변상을 각오해야 하고 형벌까지 받게 된다. 교도소 복역기간 중에는 소득이 크게 떨어져 범죄가 실패했을 때의 순수입은 마이너스가 된다. 도덕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직업으로서의 범죄가 이뤄진다면 실패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누가 앉나 소문 무성
이같이 사회현상에 대한 극단적인 경제문제화는 정치쪽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어떤 이는 정치에서 상당한 이윤이 생기므로 정치가가 되려는 다툼이 벌어지고 있고 이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수록 파쟁도 심화된다고 지적한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특정 관직을 놓고 흥정을 벌이며 표를 거둬들이는 이윤 극대화 작업이 진행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치란 자본주의적 사업으로 아주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민자당과 국민당의 대통령 후보가 지명되고 민주당 후보도 이미 가시화 되면서 누가 집권하면 어느 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가 주요 행정포스트에 적임자를 내정하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당선프리미엄이다. 그러나 앞으로 7개월 이후에나 있을 관직흥정이 각 당 후보 경선단계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미 경제부처 산하단체 이사장 등 몇몇 자리에 업무에 전혀 생소한 정치적 인물이 들어앉기 시작했다. 다음 대통령이 취임하기까지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인사잡음이 일어날 것이며 지지자들의 충성강도를 높이기 위해,또는 선거비용을 더 많이 갹출하기 위해 무슨 해괴한 「수익사업」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치의 묘미는 의외성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에서의 의외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인사정책이 그렇고,경제정책 자체가 또한 그렇다. 정치적인 배려로 임명된 관료나 정부투자·출연기관의 책임자들의 전원 교대가 이루어지기까지 꽤나 술렁술렁 거리게 되어 있다. 실세에 줄이 닿아야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매관매직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자리가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업성 검토가 끝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속셈 뻔한 공약남발
경제는 잘 몰라도 사람만 잘 쓰면 당면과제를 풀어갈 묘안이 생기지 않겠느냐는게 김영삼후보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누가,무엇을 잘아는지를 분별하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3당 합당후 그가 추천한 일부 인사들의 정부안에서의 행적은 결코 칭송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평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대표는 과거의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 민중주의 경제론에서 벗어나 자유시장 경제체제 옹호론으로 변신하고 있으나 집권만 하면 물가를 3%로 잡겠다는 공약 등을 내걸었으며 여전히 재벌기업 사주의 입장이기도 한 정주영대표는 자신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재벌해체론까지 들고나왔다. 이 정도까지 되면 경제공약이란 결국 득표를 위한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연히 주변상황과 맞아 떨어져 공약이 이뤄지면 다행이고 그게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속셈이 뻔한 내용들이다.
통화나 임금·물가 등을 몇%선에서 억제하겠다는 과거의 목표관리 정책이 제대로 실현된 적도 없거니와 부분적으로 달성됐다 하더라도 그 부작용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나를 우리는 피부로 경험했다. 신념 과잉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책임정치는 아니었다.
정치인들이 자주 흠모의 대상으로 삼고있는 대처 전 영국총리도 신념의 정치가였지만 선거전에는 민심을 사기 위해 반드시 책임정치가로 옷을 갈아 입는다. 실현불가능한 공약을 내세워 표를 잃는 우행은 하지않았다. 우리나라 한 광고회사의 여론조사 결과 69%가 「정치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반응은 가슴 아픈 일이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고 그가 취임에 이르기까지의 관료조직은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게 된다.
정치와 연관된 엉뚱한 인물들의 입출이 잦아지거나 관가가 선거역풍에 몰리게 된다면 임기말 현상 단속은 물건너간 이야기가 되고 만다. 실제로 주요 경제법이나 그 시행령을 고쳐야할 사항들이 있으나 손을 대자니 부담스럽고 적지않은 오해까지 받게돼 아예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다.
○용인술부터 닦아야
대통령 후보자들은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든,당선 후의 행정부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용인술을 보여줄 실력을 닦아야 한다. 「수익사업」위주의 인물을 고른다면 반드시 비리를 몰고 오게 될 것이다. 지금은 허황된 남의 경제공약까지 「표절」하려 해선 안된다. 이제 우리들은 후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면서 7개월 후에 표로 심판해야 한다. 그것 말고 또 무슨 무기가 있는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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