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여 관·재계도 불안한 눈치/범여권 「YS후보」 어떻게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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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권 재창출 불확실”… 전­노때완 상황달라/민주·국민당에 비선대려는 움직임까지
정권의 지주역할을 해온 범여권의 구성원인 관계·재계·군부 등이 전례없이 동요를 보이고 있다.
민자당이 김영삼대표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했지만 정권 재창출을 앞두고 정치권의 돌아가는 품새가 심상치 않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집권당의 정권재창출에 대한 확신이 과거 정권교체기 때와는 다르다.
김 후보에게 일단 줄대느라 여념없는 많은 범여권 인사들조차 이리 저리 곁눈질을 놓치지 않고 있고 어딘가 찜찜해하는 분위기다.
노태우대통령의 령이 이미 약화된데다가 이종찬의원이 분가채비를 하고 있어 범여권의 분열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주영국민당후보는 전통적인 여성향표를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정권재창출의 주요기반이었던 재계질서를 헝클어 놓았다.
이런 상황은 고정표 30%미만의 김대중민주당공동대표를 상대로 어떤 후보를 내세워도 이길수 있다는 범여권의 대선전략구도를 적지않게 흔들고 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객관적으로 김대중대표는 과거 어느때보다 집권에 가장 유리한 지점에 서 있다는 얘기가 된다.
때문에 범여권인사들이 겉으로는 집권당에 줄서는 흉내를 내면서도 속으로는 민주당이나 국민당에도 비선을 대려는 움직임도 있어 범여권의 총력태세에 허점이 나타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예상되는 4∼5파전에서 그래도 여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정황론과 여론조사결과 김영삼후보의 우세현상을 들어 정권재창출이 매우 어려운 싸움이긴 하나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아직은 더 많다. 그러나 여권인사들은 우선 13대 대통령선거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범여권 총력태세가 매우 미흡한데 불안해 하고 있다.
5년전 전두환­노태우 두사람의 권력승계때는 여권이 일사불란했다. 전 대통령은 당시 시퍼렇게 살아있는 권위와 힘으로 「노태우대통령 만들기」를 진두지휘했고 범여권도 강력한 두 김씨의 도전에 위기감을 느껴 자발적인 지원을 했다.
전 대통령은 당시 노 후보의 이미지 제고만을 위해 노 후보에게 2천억원 규모를 별도로 넘겨주었다는 설이 설득력있게 나돌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대선자금을 긁어모아 선거자금으로 뿌렸다. 전 대통령은 또 일선 행정기관을 완전 가동했을 만큼 임기말까지 흔들림없는 권한을 행사했다.
여권인사들은 당시에 비해 오늘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노 대통령은 그럴 형편도 아니고,그렇게 할 의사도 없다는게 정설같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가동·자금동원 모두 마찬가지라는데에 이의가 없다. 레임덕현상이 심화된지 오래인데 때늦게 회초리를 든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다.
확신과 전망이 서야 움직여주는게 관료조직을 포함한 범여권의 생리다.
5공청문회에서 보듯 끝까지 책임져 챙겨주는 지주가 없다고 인식하는 여권인사들에게 닦달해봐야 면종복배하기가 십상이다. 더구나 김 후보는 범여권에서 보면 완전히 뿌리가 다른 사람이다. 집권하면 범여권조직을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청와대 파견근무후 한계급 승진,원대복귀하던 관례는 고사하고 수평이동이라도 좋으니 소속부처로 빨리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더 많은 오늘의 청와대 기류는 관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대변해 준다. 30여년의 군정형태를 더이상 지속할 수 없게된 군부는 국민의 결정에 따른다고 못본체 하고있다.
군 수뇌부의 자각은 과거 반성 차원이기도 하나 3·24총선의 군 부재자투표 부정폭로에서 보듯 절대다수표인 사병들에게 수뇌부의 강요가 더이상 먹혀들지 않는 현실에서 기인한다고 하겠다.
기업인들도 속은 타지만 심드렁해 있다. 노 정권이 쪼들리는 자금난을 챙겨주지도 않은데다가 정권재창출의 전망도 불투명하니 재계인들은 「길게 살길」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투다. 국민당에 이따금 곁눈질도 하면서 김 후보측에 자금파이프 연결고리를 찾느라 고심하는 정도이지 화끈하게 달려들지 않고 있다.
범여권의 이같은 난조는 청와대와 상도동간에 미묘한 불연속선을 그리며 대선전략수립 추진에 절대적 요소인 양자간 호흡조율에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어 범여권은 한동안 탐색단계에서 고민할 것 같다.<김현일·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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