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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조직장악이 급선무/김영삼 민자대통령후보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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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처뿐인 영광” 신뢰회복 힘써야/14대국회 원만한 운영이 “시금석”/“자신감 지나칠때 치명적 실패” 일부선 지적도
김영삼민자당대표가 19일 전당대회에서 민자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그는 43세 되던 70년 신민당 후보경선에서 김대중씨에게 역전패했고 87년 대통령선거에선 야권분열속에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노태우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2등을 했다.
그런 그가 이제 여당으로 변신한지 2년만에 집권당후보가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대선에 나서게 됐다. 본인은 대권에 가장 근접한 위치에 올라섰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김 대표는 90년 1·22 3당합당 선언이후 자신의 「2인자」자리를 넘보는 끊임없는 도전에 시달려 왔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내 권력투쟁에서 승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한고비,12월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령선거 본선에서만 승리하면 중학생시절부터 꿈꿔온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 김영삼앞에 놓인 앞으로의 7개월은 지나온 38년 정치생활 전체만큼이나 어려운 고비와 장애물로 가득차 있다. 범여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해 14대 개원국회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나아가 김대중·정주영씨와 대선에서 겨뤄 이기는 것이 그의 3대과제다.
김 대표는 여당 대통령후보로 되기까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상처를 입었다. 집권당 최초의 자유경선에서 당당히 싸워 이기는 모습을 기대했던 김 대표는 이종찬후보가 마지막 순간에 이를 거부함으로써 「상처뿐인 영광」을 안게된 것이다.
경선파행은 단순한 모양갖추기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임기말을 맞은 노 대통령의 급속한 권력누수와 여당의 분열,행정부를 포함한 범여 조직의 와해현상이 응축돼있다.
호랑이를 잡으러 굴에 들어가 범은 잡았으나 세상은 범을 잡은 공로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는 형국이다. 이 후보가 탈당해 신당을 만들고 독자출마한다면 여권의 수도권·중부권·호남권 지지세력 일부가 흔들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하여튼 어려운 싸움판이 되고 말았다. 경선과정에서 권력이동을 보고 김 대표 밑에 1백70여명 지구당위원장이 몰려들었으나(전체 지구당은 2백37개) 그들을 대통령선거에서 헌신적으로 움직이게 할 힘이 YS에게 있는지는 두고봐야 안다. 이 후보 진영에 가담한 지구당위원장은 40여명. 상당수를 껴안아 온다해도 일부의 이탈자는 불가피하다.
87년 대선에서 범여권은 막강한 3김씨를 맞아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나서 자금·조직·행정을 총동원,사생결단식 대응을 함으로써 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9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 대통령이 전 전대통령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줄지,설사 나서더라도 그 당시만큼의 권력자원이 동원될 수 있을지 의심하는 관측이 많다.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고 김 대표가 노 대통령을 상대로 권력게임을 벌이는데서는 성공했지만 범여권의 마음을 잡는데는 아직 극복해야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그에겐 야당시절같은 바람을 일으킬 마력이 없어졌다. 집권당후보로서 조직의 실질적 장악에 실패한다면 대권가도는 험난해 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김 대표는 민정계중심으로 공화계를 배타하지 않는,최대한 포용력있는 당운영을 해나가며 8월중 있을 것으로 보이는 당체제개편에서 노 대통령으로부터 총재직을 이양받아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이제 완전한 정치적 운명공동체로서 협조체제에 인색할 이유가 없다. 범여조직의 실질적 장악을 한뒤 그가 해결해야할 과제는 6월부터 당장 협상에 들어가게될 14대 개원국회의 운영과 무소속당선자의 영입문제다. 민주당 김대중공동대표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대통령선거전에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민주대표로서는 시·도지사와 구·시·군의 장을 민선으로 뽑아놓아야 대선에서 공정한 선거운동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선거법도 상반기중 자치단체장 선거실시를 규정하고 있어 이를 연기하려면 야당과의 협상이 불가피하다. 개원협상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국회운영과정에서 13대에서 있었던 실력행사같은 구태가 재현된다면 「집권예정자」인 김 대표의 이미지는 손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상황은 어렵다. 2백99명 의원중 민자당의원은 반수가 조금 넘는 1백52명. 3당합당의 거여로서도 다루기 어려웠던 야당인데다 그나마 이종찬의원이 몇명을 데리고 탈당한다면 무소속 당선자를 끌어들여서라도 제2의 여소야대를 막아야할 상황이다.
개원국회를 무난히 넘기려면 자치단체장선거 연기에 내면적으로 공감하는 정주영국민당대표와 정책적 연합을 성사시킬 필요가 있다. YS의 새로운 리더십과 타협능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집권예정자로서의 이미지를 쌓으려면 그는 경제·외교 등 국가경영능력에 대해 국민적 신뢰감을 확보해야 한다. 김 후보에겐 지역표와 30년 이상 끈끈하게 맺은 고정표가 상당히 있는게 사실이고 다른 출마자들의 지지기반이 그를 능가할만한 수준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민자당이 현재 맞이하고 있는 내분을 쉽게 탈출하지 못하고 세대교체의 공감대가 확산되면 서울 등 대도시권에서의 여성향표가 이탈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김 대표의 개인 정치사를 일별해보면 그는 항상 위기와 도전에 강했으며 방심과 지나친 자신감에 차 있을때 치명적인 실패를 했었다. 지금이 그에게 「위기」의 시기인지,「자신」의 모퉁이를 돌고있는 것인지 7개월후면 판가름날 것이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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