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이종찬/「결심강행」온건파서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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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하루 유보 결정… 내부 의견조정 계속/“중간카드도 있다”협상가능성 암시/김 후보측선 “반응 떠보는 게릴라식 득표전략”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사흘 앞둔 16일 이종찬후보가 후보선출 연기요청 방침을 세우고 내부의견을 조정하고 있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되고 있다.
이 후보와 강경파들은 그동안 자유로운 경선이 방해받고 있다며 거듭 시정을 촉구했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이번 경선이 원인무효이고,따라서 후보선출이 연기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있다.
이에 대해 김영삼후보 진영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하고 있으며 이 후보 진영의 온건파들도 반대하고 있어 이 후보가 어떤 형태로 최종결심을 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
○…16일 오전 경선거부 여부에 관해 「결단」을 밝힐 예정이었던 이종찬후보 진영은 아침 긴급대책 회의에서 「일단 하루 유보」를 결정했다.
이 후보측은 오전 7시반 하얏트호텔에서 이 후보,박태준명예위원장,채문식위원장과 이한동·박준병·심명보·박철언의원,양창식위원장 등 7인협멤버,장경우부본부장 등 고위 핵심멤버들만이 참석한 운영위원회를 개최했다.
15일밤 급히 연락된 이날 회의에서는 15일 심명보­김윤환 회담내용 등 최근의 상황이 상세히 보고됐으며 참석자들은 경선거부,또는 경선원인 무효선언 등 선택할 수 있는 카드와 결단 이후 예측되는 상황 등을 심도있게 논의. 이 후보는 15일밤 대구 연설회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온후 시내 모호텔에서 측근들과 대책을 협의한후 「독자구상」의 시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아침 회의내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후보는 『요구응답 시한을 더 늦출 필요가 없으며 들러리 경선을 거부하는 모종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쪽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명예위원장,채 위원장 등 원로수뇌부와 다른 7인협 멤버중 다수는 3대 요구사항은 유효하며 결단도 필요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다시 한번 청와대와 김 후보측의 반응을 기다려 보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의 핵심측근은 『경선거부와 경선참여 사이에 중간카드가 있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는데 광화문 진영 주변에서는 일단 이번 경선의 원인무효를 선언하고 전당대회 연기를 주장하는 방안 등도 등장했다.
박 최고위원은 대책회의전 『저쪽(청와대와 김 후보측)과 협상의 여지가 더 남아있는 것 아니냐』고 말해 15일 심야에 모종의 의견교환이 있었거나 16일중 추가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을 암시했다.
박 최고위원은 대책회의후 정책평가위원 간담회에 참석,『같은 여당내 경선인데도 우리측이 집회장소를 구하거나 대의원 모으는데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걸 보면 마치 여야 대결같다』며 자신의 포철회장 경력을 의식해 『대장간주인이나 할 사람이 정치에 뛰어들어보니 이런게 정치구나 하는 무상함이 든다』고 했다.
이 후보는 『공은 이제 저쪽에 가있다. 요구시한이 지났으니 나의 입장표시도 자유로워졌다』고 말해 여전히 「중대결심」을 준비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심명보본부장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15일 우리가 밝힌 입장을 당이나 관계당사자들에게 재천명하고 강릉연설회 일정만 소화한후 서울에 올라와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영삼후보 진영은 이종찬후보측이 경선연기 기자회견을 취소한 것에 대해 초강경 입장을 흘린뒤 반응을 떠보겠다는 여론탐색용 관측기구를 띄운 것으로 해석.
김 후보측은 지금까지 이 후보가 해왔던 「게릴라전」수법을 다시 한번 되풀이 하는 것으로 보고 이에 대응할 경우 판만 벌여준다는 판단으로 공격적 모습을 자제했다.
김윤환추대위 대표간사는 『당에서 확정한 일정을 누구마음대로 바꿀 수 있느냐』며 이 후보측의 연기요구 방침을 일축했다.
그는 경선이 제대로 치러지겠느냐는 질문엔 『그건 저쪽 가서 물어보라』고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 추대위 의원은 『이 후보가 경선에 응하지 않는다면 이는 경선포기가 아니라 거부가 되는 것』이라며 『이럴경우 전당대회 당원의 의무를 포기하는 해당행위가 된다』고 흥분.
상황실장인 이치호의원도 『이종찬의원의 요구는 추대위 해체,김윤환대표간사 문책 등 「불능조건」만 제시한 것이어서 협상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이 의원의 경선거부 선언에 대해서는 별로 대응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는 눈치.
추대위측은 이미 짜여진 경선일정을 그대로 추진하는 일방,이 후보측과의 막후협상이나 청와대의 조정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김 후보측은 여권에서만 커온 이 후보가 탈당할 경우 권력핵심으로부터 당할 엄청난 압력을 감당할 수 없다고 보는데다 무엇보다 「새정치 이미지」로 정치입지를 세운 그가 세불리를 이유로 경선거부·탈당 한다면 국민여론의 비난을 감수할 수 있겠느냐고 보고있다.
김 후보측은 이 후보가 중부권의 부동표를 끌어들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경선거부를 이용한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세가 현격하게 불리한 것을 인식한 이 후보가 노 대통령에 맞서는 자신의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YS를 싫어하는 민정계 대의원들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이 후보가 경선에 지더라도 경선 이후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후보가 나약한 자세로 형편없는 득표를 한다면 그 자신의 정치적 입지는 경선후 사그러들고,따라서 차차기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는 사태를 우려한 나머지 무리수를 남발하고 있다는게 김 후보측의 분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후보측은 어떤 경우든 18일 합동연설회 개최를 수용하는 선 이상의 양보는 불가능 하다고 못박고 있다.
추대위 김윤환대표간사는 『손주환정무수석의 경질로 대통령으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추가문책요구 등에 대해서는 『추대위 대표간사가 노 대통령 임명직이 아니며 소위 정책토론을 한다면 상대방 대의원들의 공격으로 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라고 일축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 후보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무조건 출마한다는 구상으로 탈당→독자출마 수순을 밟고있는 것이라고 분석하는 시각도 없지않다.
한때 개인연설회 수용 등 유화자세를 쓰다 곧이어 「노심」의 실체를 노 대통령 스스로 밝히라고 요구해 친이 대의원의 마음을 이반시키게 한 것을 보면 경선득표만 노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김 후보 진영은 이 의원의 행보를 ▲당내에 남아있으면서 비주류 지분을 확보한다든가 ▲최종적으로 탈당사태를 대비한 명분축적용 일 수 있다고 보고 그러한 최악의 경우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하고 있다.<김진·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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