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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문학역조」심각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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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일 문학역조가 심각하다. 어쩌다 한국문학이 일본에 번역 소개되면 우리 매스컴들이 앞다퉈 대서특필할 정도로의 서점 진열대를 잠식하고 있다. 양적 역조도 문제지만 질적 역조가 한층 더 우려된다. 일본은 우리의 분단이나 정치적 상황을 다룬 작품을 정치적 관심에서 읽거나, 가벼운 대중소설을 가려 읽는데 비해 우리는 일본의 영웅, 제국주의의 혼을 다룬 작품을 마구잡이로 직수입해 읽는다. 또 지난 4월 타계한 대형작가 이병주씨가「한국의 시바 료타로」로 스스럼없이 불리고, 일부 젊은 작가들은 당대 일본 인기작가들의 영향수준을 넘어 표절논란을 부를 정도로 일본문학에 의한 우리문단의 오염도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서점가에서는 무라카미하루키 등 일본 인기작가들의 대중 소설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특히 신간 진열대는 오다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일본 영웅소설 등이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다. 20여년 전 전20권으로 번역돼「필독서」로까지 꼽히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대망』이 1, 2권으로 축약돼 각기 다른 출판사에 의해『질풍』『울지 않는 새는 죽여라』『야망은 꿈인가』『덕천가강』등의 제명으로 무차별 재 출간되고 있으며 나가오카 게이노스케의『오다 노부다가』, 시바 료타로의『덕천가강』등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더불어 속속 출간돼 임진왜란 전후의 일본 무장들이 한국에 다시 상륙하고 있다.
또 명치유신에서 청일·노일전쟁에 이르는 일본제국 건설기 영웅들을 다룬 시바 료타로의 3부작 대하소설 중 1부『제국의 아침』(전8권), 3부『언덕 위의 구름』(전10권)등도 최근 출간돼 방대한 분량에도 아랑곳없이 팔려나가며 일제의 혼에 취하게 하고 있다. 이밖에 임란을 다룬 변변한 국내작이 없는 가운데 임란 4백주년에 맞춰 오다 마코토의『소설 임진왜란』, 미야모토 도쿠조의『왕사』등 임란을 소재로 한 일본 작품도 잇따라 번역 소개되고 있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붕괴로 이제 이념이 아니라 부국·빈국으로 세계가 나뉜 시대,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제패를 꿈꾸며 달아오르고 있는 일본내 제국주의 부활 움직임이 그것을 경계해야 마땅할 한국에 흥미와 박진감으로 무장, 독서시장을 통해 그대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한국문학은 정치적 문제를 다른 작품이 그들의 정치적 관심에서 주로 읽히고 있다. 한국 문학 연구가인 오무라 마스오(와세다대 교수)는 격월간 문예지『한국문학』3, 4월호와 5, 6월호에 분재한 평론「일본에서의 남북한 현대문학의 연구 및 번역상황」에서 일본에서는 정신문화의 풍요로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용성이나 가벼운 흥미를 위해 한국문학이 읽힌다고 밝혔다.
오무라의 이 평론에 따르면 일제 식민시대에는 침략을 위한 실용성 때문에 주로 고전문학 분야에서 한국문학의 소개·연구가 이루어졌다. 패전후 일본의 민주주의 고양기인 50, 60년대에는 북한 문학만이 소개되고 남한 문학은 거의 무시됐다. 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남한 문학이 본격 소개되기 시작했으나 70년대는 주로 시인 김지하씨로 대표되는 저항문학만 받아들였다.
오무라는「한국문학이 곧 김지하라는 식이었다」며『하지만 지나치게 운동의 측면에서만 비추어져 김지하를 단순히 권력에 저항하는 정치인사로서 받아들였을 뿐 한국문학의 틀 안에서 이해하려 들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80년대 들어 최인호 이청준 윤흥길 조세희 박범신 한승원씨 등 10명 안팎 작가들의 순수·인기작품이 소개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황석영 고은 신경림 백낙청씨 등 참여문학 진영의 작품과 평론위주로 소개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대중·추리문학 등도 번역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대중·본격문학을 통틀어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된 작품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같은 지면에 발표한 평론「일본에서의 우리문학 소개·번역·연구의 문제점」에서『양적인 풍요 속에서 번역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 한국내의 일본문학 접근 방식과는 달리 일본은 남북한 문학을 비교적 차분하게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처럼 마구잡이로 일본문학에 심취되지 않고 일본은 우리문학을 그들의 필요에 따라가려 읽고 연구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이 심각한「한일 불공정 문학교류」를 바로잡기 위해 임씨는『우리 문화정책 당국은 일본주도의 우리문학 수출방침이나 관변적 편의주의 문학수출 방법을 탈피, 문화적 주체성에 입각한 정책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했다.<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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