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보사노바 그 '중심'에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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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손님들은 칵테일보다 음악에 취한 듯했다. 다들 가볍게 찰랑거리는 보사노바 선율에 취한 눈빛으로 가볍게 어깨를 흔들거나 발 장단을 맞추었다. 클럽 안을 꽉 채운 부드럽고 달콤한 선율 앞에 짜증나고 복잡한 일상은 다른 세상일 같았다. 10일 밤(현지시간) 찾은 보사노바 클럽 '발 도 비니시우스'는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평온하게 해줄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공간이었다. 브라질의 음악에서 세계의 음악으로 발전한 보사노바의 고향 리우데자네이루. 그중에서도 많은 보사노바 뮤지션이 음악적 영감을 받은 이파네마 해변에 위치한 클럽이니, 보사노바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사노바의 본산임을 과시하듯 무대 배경에는 '보사노바의 아버지'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1927~94)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의 그는 자신의 작품 같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사노바의 명곡으로 꼽히는 '이파네마의 소녀(The Girl From Ipanema)'도 이곳 이파네마 해변(작은 사진)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100석 규모의 클럽은 넓지 않지만, 음악의 울림은 컸다. 자리를 차지한 대부분의 외국인 손님들은 보사노바 선율에 발목이 잡힌 듯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프랑스 관광객 장 크리스토프는 브라질에서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보사노바 선율을 잊지 못해 남미 여행 중 이곳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재즈, 아프리카 음악 등이 섞인 보사노바는 브라질의 정열과 따뜻함을 잘 표현해 주는 음악"이라며 "파리에도 보사노바 클럽이 있을 정도로 보사노바는 세계적인 음악"이라고 말했다.

나이처럼 중후하고 부드러운 음악을 선보인 가수 에리 가우바웅에 이어 무대에 오른 여가수 호베르타는 한 마리 작은 새처럼 보사노바 선율을 타고 놀았다. 그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리듬이 보사노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보사노바의 리듬은 살사 리듬만큼이나 강력하게 사람을 끌어당기죠. 삼바와는 다른 매력이에요. 보사노바는 세상과 함께 변해 가는 열린 음악입니다."

보사노바는 열려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세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음악이 됐다. 삼바 리듬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시공을 초월하는 여러 음악 흐름을 흡수했기 때문에 세계인의 귀를 달콤하게 휘감는 주류 음악이 될 수 있었다.

대중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보사노바의 매력을 한마디로 '퓨전의 미학'으로 표현한다. 그는 "보사노바에 녹아든 50년대 미국 쿨 재즈와 프랑스 샹송이 삼바의 원초적 매력을 부드럽게 다듬었고, 쇼팽.라벨.스트라빈스키 등 클래식 음악도 보사노바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조빙의 아들이자 음악인인 파울루 조빙은 "보사노바는 아름다운 하모니에 행복과 슬픔이 교차한다"며 "단순하면서도 철학적인 멜로디가 보사노바의 생명력"이라고 말했다.

보사노바는 삼바와 함께 브라질을 대표하는 음악이지만, 분명 삼바와는 다른 매력과 효용이 있다. 50년대 리우데자네이루가 경제적 번영을 누리면서 중산층이 즐길 만한 음악이 필요했고, 고급스럽고 사색적인 멜로디의 보사노바가 그 수요를 충족시켜 줬다. 항구 도시이자 관광지인 리우데자네이루에 유입된 전 세계의 다양한 음악도 보사노바의 양분이 됐다.

삼바가 서민적인 음악인 데 반해 보사노바가 엘리트적 성격이 짙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이렇게 탄생한 보사노바는 조빙, 조어웅 지우베르투 같은 거장 덕분에 60년대 미국에 '보사노바 선풍'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보사노바는 아메리카 대륙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인 아시아에서 북유럽까지 넓게 사랑받고 있다.

최근 보사노바는 일렉트로니카(전자음악)와 결합해 라운지 음악으로 거듭났다. 보사노바는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을 음악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글.사진 정현목 기자

<취재협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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