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잘 사는데 정신질환 왜 늘어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근 각종 정신건강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넘어 외톨이, 인터넷 중독, ADHD(과잉행동주의력 결핍 장애), 반사회적 인격 장애, 공황 장애, 정신분열 등 뉴스마다 정신과 병명이 넘쳐난다.

왜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럽고 불안해진 것일까. 먹고살기는 예전보다 분명히 풍족해졌다. 육신의 수명도 늘어났다. 그런데 정신세계는 피폐해져만 가는 것인가.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에게는 분명히 정신적 문제가 있다. 그것이 질병인지, 단순한 인격 결함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힘들다. 다만 조승희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최근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이 너무 심하다.

그의 정신상태는 '이상'과 '결핍'이라는 두 차원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이상'이란 가르칠 것을 제대로 가르쳤는데 중간에 질병이 생겨서 인격이 비뚤어진 것이다. '결핍'은 인격 형성 과정에서 응당 갖춰져야 할 것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우선 정신 '이상'으로 보면 정신 증상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해법이 된다. 정신건강 문제를 백안시하고 감출수록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도 정신건강 교육을 하고 있다. 메릴랜드 주 하워드군의 학교 홈페이지(hcpss.org)를 보면 초등학교 5학년 학습 목표에 스트레스 개념, 건강한 스트레스 대처법, 우울증 증상 이해하기 등이 들어 있다. 조기 교육을 통해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행동도 이해하게 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는 방법도 익히게 된다.

둘째 시각은 '결핍'의 차원이다. 최근 인격이 성숙되지 못하고 군데군데 구멍 난 아이들이 늘고 있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이 근본적으로 갖춰야 할 인성이 있다. 생명을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는 따뜻함,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공중도덕을 지키는 자세,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등은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것을 가르치는 부모도 없고, 모범을 보이는 어른도 없는 듯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휴대전화를 끌 줄 모른다. 시답잖은 소리로 옆 사람의 귀를 아프게 하지만 전혀 미안한 줄 모른다.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을 툭툭 치고 의자 위를 뛰어다녀도 부모가 제지하지 않는다. 그러다 넘어지면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야단을 친다. 그런 부모에게서 아이가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자라면 인격이 결핍된다. 고착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돼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수 있다.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건전한 의사표현법을 가르쳐야 한다. 늘어가는 외톨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의 한 단면이다. 할 말 제대로 하면서 감정 소통이 이뤄지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남이 심각한 말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의견을 내면 존중하고 신속하게 해결책을 모색해 주어야 한다. 반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엄하게 벌을 내려야 한다. 소란을 피우면 원하는 것을 절대 못 얻도록 해야 한다. 외톨이는 자연을 접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콘크리트 숲에서 아이들의 정서는 삭막해진다. 주말이면 자녀들과 함께 가까운 산과 강을 찾자. 대화도 훨씬 잘 될 것이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생명을 사랑하고 자연 섭리를 이해하는 순응의 자세를 익히게 된다. 세상을 살 만하게 해 주는 것은 풍요로운 인성이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