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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벽」에 신분상승 한계/한국계 위상(미국속의 한인들: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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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시아계 5번째 백45만명 생활/위험지역·열악직종 종사자 많아
미국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은 미 이민 한인들에게 충격과 좌절,그리고 삶의 터전을 파괴당하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태의 원인 및 결과 분석과 한인사회 재건을 위한 전망 등을 통해 한인이민의 실상을 재조명한다.<편집자주>
미국에 이민 한 한국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은 좀더 나은 생활과 자녀교육을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우리민족이 과거 일본·중국·소련에도 이주했으나 그때는 강제로 끌려가거나 한국땅에서 살 수 없을만큼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때의 이민과 비교해 미국이민을 상향지향의 이민,또는 엘리트이민이라고도 불렀다.
좀더 나은 생활을 꿈꾸며 미국에서 터전을 잡고 있던 재미한국인들이 흑백갈등의 엉뚱한 희생물이 되었다.
그러나 재미한국인의 이민 현주소는 이같은 불상사를 이미 배태하고 있었다.
미국에 이민 한 동양계의 소수민족이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일본인·인도인·월남인 등 여러민족이 있는데 유독 한국인 타운이 대상이 되었다.
물론 LA의 한인타운이 흑인들의 거주지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리적인 조건이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지만 한인상가가 왜 흑인촌에 자리잡지 않을 수 없었는가는 한인의 미국이민사와 직접 관련이 있다.
한국인의 미국이민이 본격화 된 것은 65년 미국의 이민법을 개정하여 그때까지 국가별·인종별 쿼타제를 폐지하고 가족관계와 직업기술에 의해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1902년부터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노무자로 송출되던 초기이민과 6·25전쟁 이후 전쟁부인을 중심으로 한 국제결혼 이민,유학생 이민을 합해 64년까지만 해도 미국 전역에 1만5천여명의 한국인이 거주했다.
그러나 이민법이 개정되면서 65년 이후 매년 2만∼3만명이 몰려와 91년 현재 한국대사관 집계로 1백45만여명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실시한 90년 인구조사는 한국인 이민숫자가 79만8천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미국정부의 집계에 의하면 한국인은 중국(7백27만명),필리핀(1백40만명),일본(84만명),인도(81만명)에 이어 아시아계에서는 다섯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전체인구 2억4천8백만명중 한인은 전체의 0.3%,아시아계 전체는 미 전체인구의 2.9%에 불과하다.
한인들의 거주특징은 로스앤젤레스지역(43만명),뉴욕지역(21만명),시카고지역(16만명),샌프란시스코지역(11만명) 등 대도시에 몰려있기는 하나 중국·일본과 같이 집단거주지역이 많지않다.
한국계는 이민역사가 짧고 이민자의 교육수준이 높은데도 이유가 있겠지만 거주지가 분산되어 있어 정치적 영향력도 떨어진다.
이민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일본이나 중국인,또는 유대인이 이미 떠난 위험하고 힘든 지역과 직종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종사하는 업종은 대부분이 가족단위로 일할 수 있는 소규모 사업에 집중되어 있다.
청소부·직공 등 단순노동을 면한 대부분의 한인들은 길가의 노점상에서부터 햄버거가게·술판매가게·세탁소·야채상·의류상·주유소 등 노동집약적인 사업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이러한 업소들은 이익이 더 많이나는 흑인 거주지역에 몰려있다.
뉴욕의 야채상은 유대인이나 이탈리아인들이 하던 것을 한국인이 거의 인수했을 정도이고 세탁소의 경우 중국인이 하던 것을 인수했는데 주요도시의 세탁소는 한국인이 석권하고 있다.
한국인은 단시일내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소수민족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전체로 볼때 동양인의 소득이 백인의 평균보다는 약간 떨어지고 흑인의 소득보다는 월등한 것으로 보아 한인도 그 수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업종은 백인들이 손을 뗀 열악한 업종이고 그 노력에 비해 수입이 적다는 점에서 한인들이 직업적인 면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못하는 불리한 소수민족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로스앤젤레스 사태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난데는 한·흑간의 특수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흑인의 입장에서는 백인들이 포기한 노동집약적인 사업을 토착세력인 자신들이 차지해야 마땅한데 그 자리에 한인들이 끼어든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이러한 사업을 한인들이 근면과 성실로 성공시킨 것이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실 로스앤젤레스의 한인촌이나 시카고의 한인거리는 버려진 거리를 한인들이 들어가 발전시킨 곳이다.
한인이 이처럼 소기업에서는 조그맣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규모 기업으로 발전시킨 예는 극히 드물다. 또 일반 화이트칼러 직업에서 관리직을 맡고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는 미국의 인종편견 때문에 사회적으로 계층의 상승기회가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고용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아시아계 사람중 전문·기술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80%인데 반해 행정직·관리직은 1.3%에 불과하다.
한인은 미국시장에서 실무자가 고작이라는 얘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발언권 강화가 필요하지만 아직은 이민초기라 한인들의 목소리는 약한 편이다.
재미한인 가운데 약 25만명이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접 추계되고 있으나 이 가운데 미국의 각종 선거에 참여하는 수는 10∼15%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지역에서는 지방의회나 하원에 출마하는 경우도 있으나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이 없어 한인 후보가 예비선거 이상을 뚫은 적이 없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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