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문학속의 흑과 백(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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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검둥이,나는 수백만의 검은 손들을 보았다./융포대기에 싸인채 살기위해 쉴 새없이 꼼지락거리는 수백만의 작은 손가락들,흑인 어머니들 가슴패기의 까만 젖꼭지를 더듬으며 내민 손가락들….』 대표적 미국의 흑인작가며 시인이기도 한 리처드 라이트의 「검은 손들」이란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이 검은 작은 손가락들은 자라면서 술과 노름과 친하게 되고,마약을 접하게 된다. 그러고는 결국 차디찬 감옥의 창살을 거머쥐게 된다. 『검둥이,나는 백인 노동자의 흰 주먹과 나란히 반항의 주먹을 치켜든 검은 손들을 보았다./언젠가는 수백만의 검은 손들이/새로운 지평선에 폭발하는 주먹을 휘두를 날이 있을 것이다.』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미국문학속의 흑인문학은 한마디로 「항의」의 문학이다. 그러나 흑인작가들은 그들의 항의를 작품속에 교묘히 용해시키고 있다. 때로는 직선적인 수법으로 핏대를 올리기도 하고,때로는 애잔한 호소와 기도하는 자세로 「항의」를 실어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속에는 하나의 벽이 있다. 뛰어넘을래야 넘을 수 없는 흑백의 벽. 그 벽의 저쪽에서 그들은 자조와 소외감과 열등의식을 곱씹고 있는 것이다.
흑인의 손으로 쓰여진 최초의 장편소설은 19세기 작가 윌리엄 브라운의 『크로텔대통령의 딸』이다. 내용은 어느 유력한 백인(당시의 제퍼슨대통령을 암시한듯)과 흑인 여자노예와의 사이에 생겨난 딸이 어머니와 함께 노예상인에게 팔려가 끝내는 자살하고 만다는 줄거리다.
또 본격적으로 흑인작품을 쓴 찰스 체스넛의 소설 『정황의 얽힌 그물』은 「진실」이 아닌 「상황」에 의해 백인의 편견에 따른 재판을 받고 결국 백인손에 살해되는 한 흑인의 얘기를 다루어 주목을 받았다. 1세기전에 이미 로드니 킹사건은 암시돼 있었다. 흑인작가 제임스 블드윈은 어느 글에선가 이렇게 썼다. 『신은 흑인을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에 닮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 그것은 신에 대한 항의며 원초적인 분노의 표현이었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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