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7000억은 외지인이 챙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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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A씨는 지난해 경기도 김포신도시 토지보상금으로 263억원을 받았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587명이 2001년 이후 판교.김포 등 전국 7개 신도시.택지개발지구 개발에 따른 토지보상금으로 받은 돈은 3939억원. 1인당 수령액이 평균 6억7000여만원이다.

이처럼 대규모 주거지 개발사업지인 신도시.택지지구 토지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해당 지역 이외의 외지인 손에 들어갔다.

동탄신도시에서 외지인 보상이 가장 많아 금액으론 59%(4802억원), 인원에선 67%(1844명)로 집계됐다. 지난해 치열한 청약 경쟁을 보였던 판교신도시의 경우 각각 48%(8440억원), 61%(1562명)다. 토지보상금을 받은 외지인 네 명 중 한 명은 집값이 크게 오른 서울 강남구 등 '버블세븐' 지역 거주자였다. 토지보상금이 돈줄이 돼 근래 몇 년간의 집값 급등을 낳은 주요 배경으로 확인된 셈이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풀릴 예정인 막대한 혁신.기업도시 보상금이 정부 규제 등으로 잡혀 가는 집값을 다시 불안하게 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토지보상금 수령자 절반이 외지인=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이진구(한나라당) 의원은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제출한 '신도시 보상비 지급 내역'을 분석한 결과 2001년 이후 지난달까지 풀린 수도권과 충청권 7개 신도시.택지지구의 전체 토지보상금 9조358억원의 41%인 3조7038억원이 외지인에게 지급됐다고 24일 밝혔다.

대상 지역은 김포시 양촌지구(김포신도시), 파주시 운정지구(파주신도시), 성남시 판교신도시, 화성시 동탄신도시, 오산시 세교지구, 대전 서남부신도시, 충남 아산신도시다.

외지인 수령자는 전체 1만6784명의 절반인 8371명이었다. 특히 수도권 개발지역의 외지인 보상 비율이 높았다. 수도권 5개 지역에서 외지인 보상금 비율은 46%이고 외지인 비율은 58%였다. 동탄.판교 등에서 외지인 보상이 많은 것은 이들 지역이 강남권 대체 주거지로 개발돼 개발 기대감이 높아 외지인 토지 구입이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성남시 K공인 김모 사장은 "2000년대 초반 개발 소문이 돌면서 서울 등 외지에서 땅을 사러 많이 왔다"고 말했다.

◆ 외지인 보상금 3분의 1이 버블세븐으로=이 의원이 외지인 수령자 8371명의 주소지를 분석한 결과 서울 거주자가 3437명으로 전체 외지인의 41%로 가장 많다. 이들이 가져간 보상금은 1조7182억원으로 전체 보상금의 19%다. 서울과 인천.경기도 등 수도권에 사는 외지인은 절반에 가까운 7460명이고 이들의 보상금은 3조3966억원으로 전체의 37%다.

특히 외지인 보상금은 서울 강남.서초.송파.양천구, 경기도 성남.안양.용인시 등 버블세븐 지역에 몰렸다. 이들 지역 거주자가 받은 보상금이 총 1조1199억원으로 전체 외지인 보상금의 30%를 차지했다.

버블세븐 지역 보상금 수령자는 2080명으로 전체 외지인의 25%였다.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권 거주자가 1215명으로 버블세븐 거주자의 절반이 넘었다. 이 의원은 "강남구 거주자들은 7개 신도시.택지지구에서 골고루 보상금을 가져갔다"고 말했다.

토지보상금의 상당수는 소수에게 집중됐다. 이들 신도시의 1인당 평균 토지보상금액은 5억3836만원인데 그 10배가 넘는 50억원 이상을 수령한 사람이 125명이었다. 이 중 보상금액이 200억원이 넘는 사람이 3명, 100억원 이상이 25명이다. 692명이 20억~50억원을 가져갔고 10억~20억 수령자는 1525명이었다.

◆ 올해도 풀리는 보상금=다음달부터 전국 혁신.기업도시 등에서 10조원이 넘는 보상금이 풀린다. 대구 신서 등 전국 9곳의 혁신도시(공기업 이전 도시)에서 4조3000억원, 강원도 원주 등 기업도시 6곳에서 3조원 이상, 정부가 추가 발표키로 한 분당급 신도시 등에서 5조원 정도가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지금은 주택시장이 가라앉아 있지만 다시 꿈틀거릴 기미가 보인다면 보상금을 앞세운 주택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한 택지개발이 오히려 시중자금을 풍부하게 해 집값 급등의 배경이 됐다"며 "혁신.기업도시의 경우 순차적으로 개발해 보상금이 한꺼번에 주택시장에 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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