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정운찬 참여 땐 손학규와 후보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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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탈당을 결정한 배경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의식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 정 전 총장이 먼저 움직이면 손 전 지사가 범여권에서 차지할 자리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손(61회) 전 지사와 정(62회) 전 총장은 경기고 1년 선후배 관계다. 두 사람을 잘 아는 같은 학교 출신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정 전 총장의 대선 참여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손 전 지사의 세 규합이 진행되면서 두 사람이 범여권의 단일 후보 자리를 놓고 격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양 진영 주변에선 "한나라당만 빅2인가. 범여권에선 손학규.정운찬도 빅2 흥행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손 전 지사와 가까운 열린우리당 김부겸 의원은 "정 전 총장이 정치 참여를 결단하면 손 전 지사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유권자의 관심을 끌고, 지지 세력을 결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총장과 가까운 같은 당 민병두 의원은 "범여권 재편은 열린우리당 바깥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 중심엔 정 전 총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범여권 '빅2'에겐 동질성과 경쟁심리가 묻어난다.

정 전 총장과 손 전 지사는 기존 정치세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인공위성 행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향한 실정론과 반감에서 벗어나 있다.

정 전 총장은 17일 "(정치 참여를 하더라도) 기존 정당엔 가지 않겠다"며 독자신당론을 시사했다. 손 전 지사도 탈당 다음날인 지난달 20일 "범여권에 얹혀 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른바 제3지대론을 제시했다.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의 이념 과잉을 비판하는 정책 코드도 유사하다.

손 전 지사가 "이념주의에서 벗어나 국익을 따지는 실용주의(20일 서강대 강연)"를 말한다면, 정 전 총장은 "소모적인 진보-보수 논쟁 대신 실용적으로 나라를 발전시켜야 한다(4일 전남대 강연)"고 했다. 두 사람은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면서도, 성장 중시.교육 자율화처럼 정책 전반에서 '좌파 탈색'이 뚜렷하다.

경기고.서울대를 나와 각각 미국 프린스턴대(정 전 총장), 영국 옥스퍼드대(손 전 지사)를 거친 유학파라는 점도 양자의 공통점이다.

차이도 선명하다. 경기도 시흥(현 서울시 금천구)에서 태어난 손 전 지사와 충남 공주가 고향인 정 전 총장은 범여권 내 호감 그룹이 다르다.

탈당 직후 손 전 지사 측에 가장 적극적으로 접촉을 시도한 이들은 수도권의 열린우리당 원외위원장들이었다.

반면 정 전 총장은 충청.호남을 결집, 서부 벨트를 묶어내 한나라당과 견줄 적임자라는 평가를 지지세력에서 받고 있다. 범여권의 충청권 의원들은 그에게 상당한 호감을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극복해야 할 이미지가 다르다. 교수 출신인 정 전 총장은 서생 이미지를 벗어나 거친 정치판에서 세를 규합하고, 돌파력을 보여주는 게 관건이다. 권력의지 문제다. 한나라당 출신인 손 전 지사가 범여권에서 안착하려면 탈당과 변절의 이미지를 극복하는 게 필요하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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