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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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선택과 결정을 내리면서 살아간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불가피하게 '노'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예스(Yes)'와 '노(No)'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삶이요 스트레스다. 우리와 의견을 달리하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오'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싫어하진 않을까. 우정에 금이 가지는 않을까. 단골 고객이 발길을 끊지는 않을까. 그냥 골치 아프니까 포기하고 '예'라고 말해버릴까. 특히 직장에서는 승진하려면 '예스맨'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이 간단치 않다. 용감하게 거절하지 못한다면 일은 점점 불어날 것이고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는 일이 없어 스트레스만 가중된다. 자신은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상대방에게는 실망감만 주고 만다. 남을 기쁘게 하려고 '예'라고 대답하지만 결국엔 양쪽 모두가 상처를 입는다.

마하트마 간디가 그랬던가. 가장 깊은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노' 한 마디는 단지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심지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내뱉는 '예스'보다 훨씬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모두가 '예'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려면 용기뿐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기분좋게 거절하는 방법은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노하우'다. '노'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우리 세상은 환경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현실 회피주의자.방관자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고서도, 우정에 금이 가지 않고서도 '아니오'라고 말하는 방법은 없을까. '"미안해요"라는 말이 가장 하기 어려운 것같아요'(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라고 팝가수 엘튼 존이 노래했지만, 사실 '미안해요'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니오'라는 말이다.

세계적인 협상 전문가인 윌리엄 유리 박사(하버드대 법대 교수)는 신간 '긍정적인 '노'의 힘: '노'라고 말하고서도 '예스'에 도달하는 법(The Power of a Positive No: How to Say No and Still Get to Yes'(Bantam, 2007, pp. 272)에서 '노'라는 짧은 한 마디를 내뱉기 어려워 하는 것은 '노'를 '전적인 거절(total rejection)'과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아니오'라고 거절하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건설적인 방법으로 '노'라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이다.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은데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나(순응), 강하게 반발하는 것(공격),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회피)은 모두 아무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방법이다.

이 책은 '노'는 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날카롭게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를 내리꽂는 거절의 메시지가 아닌 새로운 종류의'노'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노'는 정책 변화 가능성을 담고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 말하자면 '노'는 새로운 개념의 '예스'다. 긍정적인 '노'는 삶의 지혜이며 기술이다. '노'는 강력하고 긍정적인 가치관 확립에서 출발해야 한다.

유리 박사가 제안한 건설적인 대화의 3단계 방법은, 1)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가치관(YES!)이 2)정반대의 가치관(NO)과 만나 3)다른 긍정적인 결과(YES?)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긍정적인 노'는 나와 상대방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열어주는 윈윈 전략인 셈이다.

이 3단계는 고전적인 스토리 텔링 기법과 유사하다.

(제1막) 주인공은 그가 발전시켜온 가치관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는다. (제2막) 주인공은 거세게 저항해야 할 큰 적을 만난다. (제3막) 엄청난 갈등과 투쟁 끝에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가령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하는 아들이 있는데, 항상 주말 근무는 그의 몫이다. 결혼해서 집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데도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집에서 가장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주말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YES!) "이제 더 이상 주말 근무는 못하겠어요"(NO) . 마지막 단계(YES?)는 자기가 주말 근무를 하지 않더라도 사업이 잘 돌아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 유리 박사의 신간이 나온 다음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과 경제주간지 '포브스'(Forbes)는 앞다퉈 '"노"라고 말하는 법'이란 특집 기사를 실으면서 '거절의 노하우'를 15개의 팁으로 정리했다.

'노'라고 말하는 법 15계명

1. 정중하지만 직설적으로 거절하라. 나이스하게 보이려고 돌려서 말하지 말라.

2.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라. 열심히 듣고 거절하는 사람에겐 실망감이 덜하다.

3. '아니오'라는 말로 시작하라. 이유부터 늘어놓으면 상대가 딴지 걸기 쉽다.

4. 확실한 이유를 대라. 그냥 '안돼'라고 말하지 말라.

5. 불필요하게 장황하게 말하지 말라. 억지 변명처럼 들리기 쉬워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6. 규칙을 세워두라. 주말에는 웬만한 전화는 안 받는다, 친구에겐 돈을 빌려주지 않기로 했다 등 규칙을 정하고 미리 알려라.

7. 사소한 요구라고 방심하지 말라.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로 오히려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경우도 있다.(이 대목에서는 '대청을 빌려 주니 방까지 들어온다'는 한국 속담이 생각난다.**필자주)

8. 표현을 부드럽게 한다고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낮추진 말라. 상대방은 당신이 '완벽한 사람'이라 치켜세우며 '예'라는 대답을 유도할 것이다.

9. 바로 거절하기 곤란하면 일정을 체크해보고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하라. 면담이나 전화.이메일을 통해 충분한 근거로 명확한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라.

10.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 새 프로젝트 때문에 지금 진행 중인 다른 일이 영향을 받는다.

11. 상사에게 일의 우선순위를 물어서 확인하라.

12. 다른 대안을 제시하라. 시간을 옮기면 가능하다고 말한다거나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동료를 소개하라.

13. 이메일로 거절 의사를 밝히는 것은 위험하다. 글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적대적 감정을 지닌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많다. 꼭 이메일로 답장해야 한다면 내용을 완성해 1시간 정도 저장해뒀다가 보내기 전에 다시 한번 읽어보라.

14. 마감 시간에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 하지만 상대방이 당신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

15. 결과에 대해 심사숙고하라. '아니오'라고 말하면 결과는 명백하고 즉각적이다. 하지만 '예'라고 말하고 나서 파생될 엄청난 결과도 인식해야 한다.

◆윌리엄 유리=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사회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법대 대학원에서 '글로벌 협상 프로젝트'팀을 이끌면서 CEO 등을 대상으로 협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미 국방부와 백악관 위기관리센터의 자문을 맡아 기업 합병에서 켄터키 탄광 파업, 러시아와 전 유고연방의 종족 분쟁 등을 다뤘다. 그의 저서 'Getting to Yes'(공저 로저 피셔, 1982), 'Getting Past No'는 500만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 셀러다. 'Getting to Yes'는 '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박영환 옮김, 장락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이밖에도 'Getting to Peace: Transforming Conflict at Home, at Work, and in the Community' (Viking, 1999), 'The Third Side: Why We Fight and How We Can Stop '(Penguin, 2000)등의 저서를 냈다.

◆추천 도서◆

-Duke Robinson, 'Too Nice for Your Own Good'

-Tenserheim, 'Don't Say Yes When You Want to Say No '

-Manuel Smith, 'When I Say No I Feel Guilty'

-Alberti and Emmons, 'Your Perfect Right'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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