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만명에 2천4백억 피해/12개 부도상장사 흑자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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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빚 줄이고 매출 “뻥튀기기”/증관위,회사측 자료만 심사 부실적발 “구멍”
적자기업의 흑자조작사건은 악덕기업주들이 자본증식등 자신들의 이윤만을 위해 기본적인 상도의마저 저버린채 선량한 수십만명의 소액주주들을 희생양으로 삼은데다 투자자들을 보호해야할 공인회계사들 마저 범행에 가담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결국 기업들이 공시한 재무제표를 믿고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전한 주식시장의 기본 전제가 뿌리째 흔들린 셈이다.
검찰 조사결과 이번 수사의 대상이었던 12개 부도상장사중 6개사가 기업공개 전부터 적자상태였으며 나머지 6개사 역시 공개후 적자로 돌아서고도 재무제표를 조작,흑자기업인 것처럼 투자자들과 은행 등을 속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부실기업이 기업을 공개하는 이유는 상장회사가 될 경우 각종 세제 및 금융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장과 동시에 소유주식가격이 폭등,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재무제표 조작방법으로는 ▲채무를 기록에서 빼거나 ▲타기업과 짜고 가공의 매출을 창출하고 ▲재고품의 가치를 과다하게 평가하는 방법 등이 사용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영원통신의 경우 설립이후 단한번의 흑자를 내지 못하고도 현우컴퓨터라는 유령회사를 설립,이 회사에 계속 물품을 팔아 이익을 내는 것처럼 회계장부를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이와 함께 주식공개 직전,적자 상태에서도 유·무상증자를 통해 보유주식지분을 늘린뒤 주식공개에 따른 주가차익을 챙기는 소위 「물타기 증자」를 했다.
이들 부실기업들은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불과 6개월에서 3년사이에 모두 도산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가 주가가 폭락,소액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경일화학의 경우 3만8천7백원까지 하던 주가가 부도와 함께 5백40원으로 폭락하는등 2만원이상을 기록하던 주식들이 1천원미만으로 떨어져 휴지와 다름없이 변했다.
검찰은 이번에 적발된 기업주들의 흑자조작으로 13만여명의 소액주주들이 모두 2천4백여억원의 재산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일부 기업주들은 도산하기 직전,기업내부의 정보를 이용해 보유주식을 대량매각해 이 사실을 모르고 산 투자자들을 울렸다. 구속된 백산전자 최석영씨와 양우화학 이병국씨는 극도의 경영악화실정을 숨긴채 각각 5만7천주와 1만주의 주식을 부도직전 주식시장을 통해 판 것으로 드러났다.
부실기업을 유망기업으로 믿고 거액의 사업자금을 대출해준 은행들 역시 피해자가 됐다.
적발된 12개사의 부도당시 채무액은 모두 4천6백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수사결과 부실기업이 흑자기업으로 가장 하더라도 이를 가려내도록 만들어진 안전장치에 여러가지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상장신청에 대한 심사를 맡고 있는 증권관리위원회가 회사측 제출자료만을 토대로 심사하고 있어 회사측이 재무제표 등을 조작할 경우 부실기업도 버젓이 상장회사로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기업내의 자체감사제도가 존재하더라도 감사가 주로 친·인척 등으로 구성돼 회사비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없는데다 공인회계사가 담당하는 외부감사의 경우도 회계사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고객유치차원에서 대개 회사의 비리를 눈감아 주는 실정이어서 사실상 제동장치가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장신청에 대한 증권관리위원회의 심사가 보다 엄격하게 실시돼야 하고 내부 및 외부감사제도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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