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얘기 무성한 현대상선 수사/김석기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세청의 고발로 8일 시작된 현대상선 탈세사건수사가 21일 정몽헌 부회장이 구속됨으로써 일단 마무리됐다.
모두 7명의 구속으로 끝난 이번 사건은 비리는 도려내야 한다는 순수수사논리로만 평가한다면 당연한 검찰권행사라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특히 그동안 검찰이 손대지 않았던 재벌에 대해 정공법으로 환부수술의 칼을 들이댄 것은 사회의 「어두운 곳」엔 어디라도 법의 빛이 스며들수 있다는 경고차원에서 나름대로 지지가 있을법하다.
그러나 이번 수사는 이런 긍정적인 평가못지않게 사건당사자 주변의 정치·경제적인 상황요인과 사건표출과정에서 일어난 시비등 「문제점과 역기능」도 아울러 포함하고 있는 이중성을 보여주었다.
정주영 국민당 대표의 강도 높은 정부비난과 국민당의 급부상을 견제키 위한 정부의 현대공세 일환으로 국세청과 검찰이 동원됐다는 분석이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는 분위기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수 있다.
또한 수사과정에서 보인 검찰의 갈팡질팡하는 태도가 이 사건이 단순한 경제사건이 아닌 「정치사건」이라는 의혹을 짙게했다. 정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사건초기에는 검찰이 국세청 고발내용 확인수사라며 실무자 4명을 구속하는등 빠른 행보를 보였으나 점차 느슨해지더니 이런저런 핑계로 정부회장의 소환을 늦추고 지병을 이유로한 출두연기요청을 흔쾌히 받아주는등 정부와 현대간의 「협상」에 수사가 끌려다니는 인상을 주었다.
더구나 정부와 현대의 협상설이 무성하자 『검찰은 정부회장을 구속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슬그머니 후퇴하는 태도를 보인것도 껄끄러운 대목이었다.
검찰 주변에서는 한때 정부회장의 신병처리를 둘러싸고 대검과 서울지검간에 불협화음이 있었다는 얘기까지 들리기도 했다.
검찰이 비자금을 리베이트로 사용했다는 현대측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나 해운관련당국의 전·현직 간부들이 비자금 용도 수사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정부에 더이상 부담을 주지 않기위해 수사에 적극성을 띠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국 정부회장 구속으로 엄정한 단죄의지는 보여줬으나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난 검찰의 파행성수사나 사건을 정치적인 시각에서 해석·처리하는 풍토는 하루빨리 고쳐져야 한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