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월요인터뷰

오늘 방한하는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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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만난 사람 =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23~25일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솔직히 아제르바이잔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카스피해 연안 소국인 아제르바이잔은 우리만 모를 뿐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다. 경제성장률이 30% 안팎을 넘나든다. 하루가 다르게 새 유전이 발견되고, 새 송유관이 깔리는 등 나라 전체가 온통 개발과 공사로 분주하다. 2003년 아버지 게이다르 알리예프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권좌를 물려받은 일함 대통령이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던 전망은 무색해졌다. 일함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수도 바쿠의 대통령 접견실에서 그를 만났다. 부자 세습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점이 만나기 전부터 가장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해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한국에는 왜 가는 겁니까.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의 아제르바이잔 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급속히 가까워졌어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나라가 잘 몰랐지 않습니까. 다행이라 여깁니다. 무엇보다 고도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방한 중에 양국 경제인이 함께하는 비즈니스 포럼도 열 계획입니다."

-아제르바이잔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5%라고 하는데 이거 정말입니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수치입니다.

"(웃으며) 사실입니다. 지난해 35%, 2005년은 26%, 2004년엔 11% 성장했습니다. 올해 1분기는 40% 성장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경제 전문가들도 역사에 없던 일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이런 결과를 만들었습니까.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겁니까.

"정치 안정을 바탕으로 강력하게 추진해온 시장위주의 개방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민간 기업을 돕고 규제들을 푸는 데 역점을 뒀지요. 그 결과 외국 회사들이 아제르바이잔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그 힘을 받아 전체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석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성장률 35% 중 13% 정도는 비(非)에너지 분야에서 기여한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련식 사회주의를 시장경제체제로 돌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물론 어려움이 많았죠.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겪었던 정치적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정치적 독립은 얻었지만 경제는 완전히 붕괴됐었으니까요. 그래도 전임 대통령이 정치적 안정 기반을 구축하면서 90년 중반에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독립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GDP의 80%가 민간 분야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91년에는 GDP의 100% 모두를 국가가 창출했었죠. 과거의 사회주의 시스템은 이제 끝났습니다."

-70년 이상 사회주의 체제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어디 쉽게 바뀌겠습니까.

"맞는 지적이에요. 지난 16년 동안 소위 말하는 사회주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변화에 쉽게 적응했지만 구세대는 힘들어했어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돈을 벌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벌어 봐야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석유 수출로 오일 달러가 흘러 넘치고 있으니, 이제 아제르바이잔 경제의 고민은 돈을 어떻게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 아닙니까.

"지금은 그렇게 된 셈입니다만 3년 전만 해도 최대 고민은 항상 돈을 어떻게 버느냐 하는 것이었죠. 2003년 정부 예산은 겨우 15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올해는 65억 달러입니다. 이외에도 아제르바이잔 오일펀드의 예산까지 합치면 80억 달러가 됩니다. 800만 명이 조금 넘는 인구에 80억 달러 예산은 그리 작은 규모는 아니죠.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아제르바이잔의 에너지 수출이 향후 20년간 2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잘 쓰느냐로 고민한다는 말이 과장은 아닙니다."

-미국.러시아.중국 같은 강대국들이 아제르바이잔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석유 파이프 라인을 둘러싼 신경전이 대단한데 어떤 대응 전략을 갖고 있습니까.

"오로지 아제르바이잔의 국익에 따라 판단할 겁니다."

-하얏트 호텔에 묵고 있는데 숙박료가 260달러가 넘습니다. 아제르바이잔 소득 수준에 비해 너무 비싼 것 아닙니까.

"가격은 시장이 정하는 것입니다. 민간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데 정부가 일절 간섭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같은 급의 호텔이 바쿠에 다섯 개 정도 있다면 경쟁을 통해 가격이 내려갔을 것입니다. 다행히 곧 그런 호텔들이 더 생긴다고 들었습니다. 호텔이 생기는 것도 시장에 의해 이뤄집니다."

-시장을 정말로 신뢰하십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실패나 부작용도 많지 않습니까.

"잘 압니다. 그렇지만 시장 말고 다른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 시장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덜 부정적인(less negative) 쪽으로 선택해야겠지요. 시장경제를 배격한다면 결국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인데, 우리는 겪어 봐서 계획경제가 뭔지 압니다. 한국은 그런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 고통을 모르죠. 아마 상상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대통령이 웬 통계를 그리도 훤히 꿰고 있는 겁니까.

"저는 이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경제든 정치든 사회 문제든 당신이 필요한 수치는 내가 다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저의 일이죠."

-한국과는 어떤 식의 경제협력을 기대합니까.

"우선 한국에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한국 국민은 아무 자원도 없이 빈곤에서 급성장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기업도 많이 키워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은 한국에 에너지 자원을 줄 수 있고, 한국은 우리에게 제대로 된 기업가 정신과 기술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양국 관계가 비록 늦게 발동이 걸리긴 했어도 아주 잘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에 기대가 큽니다."

정리=이석호 이코노미스트 기자

알리예프 대통령은 …

일함 알리예프(46) 대통령은 30여 년 동안 아제르바이잔을 통치했던 아버지 게이다르 알리예프의 뒤를 이어 2003년 권좌에 올랐다. 같은 해 10월 치러진 대선에서 아버지 게이다르의 절대적 지원에 힘입어 77%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다. 그는 취임 이후 강력한 카리스마로 정치를 안정시키는 한편 10~30%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끌며 '세습받은 권력자'라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고 있다. '불의 나라'로 불릴 만큼 풍부하게 매장된 석유가 성장의 원동력이다.

일함은 1961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태어났다. 바쿠국립대학을 졸업한 뒤 러시아 모스크바의 국제관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91년 소련 붕괴 뒤 모스크바와 이스탄불에서 한동안 개인사업을 하던 그는 94년 5월 대통령이었던 아버지에 의해 아제르바이잔 국영석유회사(SOCAR)의 부사장에 임명됐다. 이어 이듬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심장병을 앓던 게이다르 대통령은 2003년 8월 아들 일함을 총리에 임명했다. 뒤이어 같은 해 10월 대선에서 그를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움으로써 사실상 후계구도를 완성했다. 아들의 당선을 지켜본 80세의 게이다르는 12월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숨을 거두었다. 당시 야당 지지자 1만여 명은 부자 세습을 비난하며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은 아제르바이잔의 풍부한 석유자원과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 부자 세습을 묵인했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아버지가 닦아놓은 친서방 정책을 계승해 외국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유전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2005년 개통된 BTC 송유관은 그의 최대 치적으로 꼽힌다. 바쿠에서 시작해 그루지야 트빌리시, 터키의 제이한을 잇는 BTC 송유관은 러시아를 우회해 서방으로 카스피해 석유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주요 통로다.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바쿠=이석호 이코노미스트 기자, 서울=유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