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자연경관 되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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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어지럽게 치솟은 빌딩들이 유독 숨막히게 느껴질 때마다 옛날의 아름답던 서울을 생각해 본다. 1900년대의 지도나 사진, 또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궁들로 미뤄 짐작컨대 우리의 서울은 정말 아름다웠던 도시임에 틀림없다.
북으로 인왕산·삼각산·북한산·도봉산·불암산, 남으로는 남산·관악산이 둘러싸 그지없이 아담했던 4대문 안.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복궁을 바라보고 종로3가 쪽에서 돈화문을 바라보면 뒤편으로 병풍을 두른 듯 겹겹이 에워싼 산들, 가회동·원서동 언덕빼기 양켠에 자리잡은 한옥의 멋스런 지붕들, 또 남쪽으로 눈을 주면 남산을 중심으로 한 폭의 그림이 펼쳐졌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원래의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생활 속에서 상당한 여유를 누렸음직하다. 더구나 물 맑은 청계천과 정릉·자하문 골짜기는 얼마나 커다란 생활의 즐거움이요 위안이었을 것인가.
그런 서울이 도시로서 마땅히 갖춰야할 아름다움을 거의 다 잃고 말았다. 6·25동란으로 서울이 무참히 파괴되고 갑자기 생겨난 판자촌 때문에 녹지가 크게 줄어든 것까지는 일단 불가항력이었다고 치자. 그런데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마구잡이로 건물을 지어 사람을「수용」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을 막무가내로 파괴한 것은 인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강남개발 역시 서울이 거대도시로 팽창하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자연관을 조금이나마 본받았더라면 서울이 지금처럼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70년대부터 마구 지어지기 시작한 아파트들이 그 거대한 콘크리트 벽으로 한강을 차단해 버리기에 이른 개발정책, 그게 과연 어떤 안목에서 나온 것인가. 또 산기슭으로 올라갈수록 건물은 낮고 작아져야한다는 기본원칙조차 무시한 채 소위「달동네」재개발 명목으로 높은 지역에 15·20층 아파트들을 짓는 바람에 서울의 경관을 완전히 망쳐놓은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나 제3한강교를 건널 때 느닷없이 남산을 가로막아 서울을 찾는 사람들에게 매우 불쾌한 인상을 안겨주는 외인아파트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제 허물어버릴 것은 과감히 허물어버리고 서울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되살려내야 한다. 6백년 역사의 향기가 영영 사라져버리기 전에.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자연조건을 갖춘 서울은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좀더 쾌적하고 멋진 도시로 가꾸어질 수 있는 길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이 삭막한 빌딩 숲에서 종종 숨막혀하면서도. 장세양< 건축가·공간사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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