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지구촌 사람] 3. 네오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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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알카에다의 테러공격에 사라지고 한달 뒤인 2001년 10월 초. 이슬람 순례객 차림의 말을 탄 한 무리가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산맥을 넘어 마자르 이샤리프로 접근했다.

변장한 미 특수부대원인 이들이 위성장비로 신호를 보내자 곧 인근 탈레반군 기지와 알카에다 캠프로 합동직격탄(JDAM)과 토마호크 미사일이 내리꽂혔다. 후에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장관이 "21세기 첫 전쟁은 기마전으로 시작됐다"고 농담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개막 장면이다.

17개월 뒤인 2003년 3월 20일 새벽. 이라크 바그다드의 주택가로 두발의 벙커 파괴탄이 떨어지면서 이라크전이 시작됐다.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과 두 아들의 목숨을 노린 이른바 '참수 공격'이었다.

두 전쟁의 막후에는 럼즈펠드 국방부장관.폴 울포위츠 부장관 등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안보.외교 분야의 실세로 급부상한 신보수주의자들이 있다. 약칭 네오콘(Neocon)으로 불리는 이들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후 10여년 간 미국기업연구소(AEI) 등 싱크탱크와 학계.언론계 등에서 은둔해 있다 행정부로 입성한 뒤 9.11 테러 이후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마음껏 휘두르며 세계 질서를 바꿔나가고 있다.

이라크 같은 독재 국가들을 민주 국가로 재편, 미국에 대한 잠재적 위협과 도전을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세계 평화와 번영을 보장한다는 것이 네오콘의 이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네오콘의 주장대로 유엔과 전통적 동맹인 유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예방 전쟁'과 '선제 공격론'을 내세워 이라크 전쟁을 강행했다.

울포위츠 부장관은 91년 걸프전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중동 민주화를 위해 이라크 독재정권을 즉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거부당한 이래 12년 만에 꿈을 실현한 것이다.

그는 나아가 "시리아.이란도 민주화돼야 중동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초강경파로 분류된다.

존 볼턴 국무차관은 일본 등 11개국이 참여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이끌고 있다. 이 구상에 따르면 북한 등 불량 국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민간 항공기와 선박의 자유 운항 등을 보장하는 국제법적 한계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네오콘의 세계 재편 구상은 전 세계 군비의 절반을 지출하고 있는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지하고 있다.

럼즈펠드 국방부장관은 현존 세계 최강 미군을 앞으로 수십년간 도전자가 나올 수 없도록 더욱 강력하게 변화시킨다는 '군사 변혁'작업의 총지휘자다. 전 세계에 배치된 거대 미군을 기동.첨단군 등 신속대응군 체제로 재편한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대 규모인 4천13억달러(약 4백80조원)의 2004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승인했다. 네오콘이 어마어마한 돈으로 내년에 국제정치판도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벌써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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