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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앓는 초교 생 학원수강 절름발이 지적 성장 우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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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조기교육 붐을 타고 초교 생들 사이에 학원수강열기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어 학교수업에서 부작용이 잇따르는 등 정규교육이 파행으로 치달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부분의 학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정규교과과정을 앞지르고 있고 문제를 푸는 방법도 원칙보다는 쉽고 빠르게 푸는 「속성 풀이」식 변칙적인 방법을 학생들에게 주입시켜 학생들이 학교수업을 불신하거나 수업에 흥미를 갖지 못해 수업 태도가 산만해지기 일쑤며 교사들 또한 학원수강에 따른 학력 차로 수업진도 맞추기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실정.
교육 관계자들은 『초교 때부터 이 같은 학원수업에 길들여질 경우 창의적· 논리적 사고력의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서울강남지역의 초교 생 학원수강실태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서울개포동G국교5년 최모 군(11)은 오전6시에 일어나 인근 K속셈학원에서 1시간동안 산수강의를 듣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최 군은 오후3시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셔틀버스를 타고 부근 H스포츠센터에서 1시간동안 수영강습, 다시 오후7시부터 개인강사로부터 클라리넷레슨을 받고 8시30분부터는 부근 S피아노학원에서 레슨을 받는 등 하루 4시간이상을 각종 학원· 과외수강에 할애하고 있다.
이밖에 강남일대의 아파트촌 주변에는 오전6시를 전후해 컴퓨터· 바둑학원 등을 찾는 초교 생들도 상당히 많다.
개학과 함께 속셈·미술·태권도 등 세 곳의 학원에 다니고 있는 서울 잠원동 J국교 2년 강 모군(9) 은『대부분의 급우들이 두 곳 이상의 학원에 다니고있으며 학원을 다니지 않거나 심지어 유치원을 나오지 않은 학생들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말해 과열학원수강의 실태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에 따른 수업부작용도 심각하다.
서울 삼성동 S국교 김 모 교사(39· 여) 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에서 이미 배운 과정을 가르치는 산수·음악시간 등에는 만화책을 보거나 잡담을 나누는 경우가 많아 수업이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있다』며『학원숙제를 하느라 학교과제를 못해왔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학생들도 상당수라고 밝혔다.
지난 방학중 중학과정의 산수를 학원에서 배웠다는 서울 개포동 G국교6년 이모 군(12) 은 『수업시간에 제시되는 방정식과 도형넓이문제를 학원에서 배운 속성풀이 공식으로 쉽게 풀 수 있는데 굳이 부분으로 나눠 푸는 담임선생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혹 모르는 문제가 있더라도 선생님보다는 학원에 가지고가 해결한다』고 말해 심각한 수업경시 풍조를 드러내고 있다.
서울여의도 Y국교 4년 김모 양(11)도 『이미 학원에서 고급교재인 체르니까지 다 뗀 상태여서 기본적인 박자· 음계 교육을 하는 음악시간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며 『음악· 미술에 관한 한 학원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4학년이상 주3시간 정도씩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고있는 서울 둔촌동 D초교, 제기동 J초교 등에서는 학급당 10여 명의 학생들이 컴퓨터학원에서 「로커스」와 「D베이스」등 중급과정까지 마쳐 2급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학생들도 있는 반면 교사들의 경우 1년30시간의 연수에도 불구, 학창시절 대부분 컴퓨터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키보드 조작법 등의 기초교육에 머물러 학생들의 무관심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학원수강유무에 따른 학력 차는 중산층과 빈곤층이 혼재하는 학교에서 두드러져 서울 고덕동 K국교에서는 하일동의 일부 빈곤층 학생들에게, 석촌동 S국교에서는 가락시장 영세노점상 자녀들에게 수업 중 중점보완지도와 함께 특별과제물을 내주는 등「진도 맞추기」에 골몰하고있으나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육전문가들은 이러한 정규교육 파행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국교의 교과전담교사제의 시급한 확립과 현재 서울시내에만 2천1백여 곳에 이르는 불법과외·무인가 학원의 단속을 철저히 해야한다고 강조하고있다·
서울잠실국교 김정현 교무주임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위해 현재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교과전담 교사제를 전면 실시해 학생들에게 관심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청 조성선 초등교육과장(53)은 『변칙학원의 시급한 정리와 함께 우선 학부모들의 학원 보내기 경쟁심리가 자제되어야한다』고 밝혔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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