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청 복지요원 김영희씨(앞서 뛰는 사람들: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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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달동네 누비며 불우이웃에 「사랑의 불씨」배달/“버려진 이들에 「복지」 돌려줘야”/결혼도 잊은채 “구민의 대모” 자족
90년 2월 육군 하사출신으로 부인을 잃고 술에 의지한채 자포자기에 빠진 유모씨(56)를 찾아갔다. 외아들(24)은 만기제대가 석달 남아있는 상태였고,21세된 딸은 가출하고 없었다.
그를 찾았을때 이웃에서 자살을 하려는 유씨에게서 간신히 빼앗았다고 내놓는 극약을 보고 이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입원을 거절하는 국립정신병원 관계자에게 「유씨를 입원시키지 않으면 외아들이 탈영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 젊은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된다」고 애원한 끝에 간신히 입원을 시킬 수 있었다. 석달뒤 전역신고를 마친 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한 아버지와 함께 찾아와 거수경례로 감사인사를 했을때 바로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임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출했던 딸도 돌아와 유씨네는 더이상 도움을 필요로 하지않는 자립가정으로 일어섰다.
지난연말 보사부의 자활공로사례 수기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서울 성북구청 사회복지과 사회복지전문요원 김영희씨(36)의 글 「사랑의 불씨를 나누면서」의 일부다.
수기내용 그대로 김씨는 달동네를 누비며 「사랑의 불씨」를 나누어 주는 보람에 산다. 그런 김씨를 주민들은 「성북구 대모」라고도 부른다.
관내 3천2백가구 7천여 생활보호대상자들에게 취업알선·자활유도·생활비지급 등 생계보호업무가 그의 일이다. 그러나 김씨에게 이 일은 단순한 직업이상의 것,바로 「하느님이 준 사명」이다. 그렇게 알고 주어진 모든 시간과 능력을 쏟아붇고 있다. 성북구의 달동네를 그녀는 손바닥보듯 한다.
교회에 나가는 일요일만 빼고 4년동안 온종일 달동네 골목에서 살다시피 해왔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처녀가 작업복 차림으로 영세민가정을 찾아 다니자 난데없는(?) 친절에 익숙지 않은 일부 주민들은 『복지요원이 무슨 기관원같은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이제 주민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며 스스럼없이 김씨를 찾는 사이로 변했다.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으로 인식된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무지와 무능력,그리고 자존심때문에 널리 홍보돼 있는 국가복지정책의 자기몫 마저 제대로 찾지 못하고 빈곤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의외로 많이 방치돼있습니다. 그들에게 물질적 혜택과 더불어 삶의 의욕을 북돋워 주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자 함께 사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길입니다.』
김씨는 서울여상을 거쳐 방송통신대 2년을 수료하고 건국대에 학사편입,농학과를 졸업한뒤 대기업사원,주산학원교사,전남 신안군 용도재생원 교사 등으로 근무한 경력여성이다.
「뭔가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서울로 올라온 김씨는 87년 12월 별정직 7급 사회복지요원 1기시험에 응시,합격했다.
『요즘은 구청에서 서류업무를 하느라 주민들과 접하는 시간이 줄었어요. 물론 서류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중요한 일이지만 발로 뛸때 느끼는 보람을 실감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
일에 매달려 아직도 미혼으로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김씨는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라도 결혼하겠지만 불우한 이웃들의 곁에 끝까지 남고 싶다』고 했다.<봉화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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