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살인 예고였나 'KILL … HATE' 습작 희곡 곳곳 섬뜩한 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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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벌어진 다중살인 얘기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친구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조승희가 한 짓이 틀림없다'는 확신이었다."

버니지아공대에서 지난해 가을 조승희씨와 같은 강의를 들었던 이언 맥팔레인(지금은 졸업 뒤 AOL 근무)은 조씨가 쓴 희곡 '리처드 맥비프'와 '미스터 브라운스톤' 두 편을 17일 AOL 사이트에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맥팔레인은 "작품이 (조씨의 살해 행위를 예고라도 하듯) 악몽처럼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내용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작품을 공개하는 것이 법에 저촉될지 몰라 공개를 놓고 망설였다"며 "다른 사람들이 상황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두 작품은 각각 A4용지 10~11쪽 분량의 단막극으로, 10대의 주인공들이 아버지나 교사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치를 떨며 복수하겠다고 벼르는 내용을 담았다. 어른은 자신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변태'와 '사탄'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따라서 두 작품에는 첫 장면부터 끝 대목까지 '그를 증오한다''그를 죽여버리겠다'는 대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10대에 대한 강간.성추행을 암시하는 내용에 거친 욕설과 폭력 묘사 때문에 AOL은 공개에 앞서 "이 희곡들엔 불경스러운 욕설과 거북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리처드 맥비프'는 13세 소년 존과 그의 의붓아버지 리처드(40세)의 갈등을 그렸다. 존은 계부가 자신의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해 친아버지를 살해하고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게다가 계부는 자신을 성추행하는 파렴치한이다. 어린 존은 계부에게 "개자식""입 닥치고 내 말이나 들어"라며 욕설을 퍼붓는다. 존은 또 자신의 방에서 혼자 웃으며 계부의 얼굴 사진에 화살을 던지며 "그를 증오해. 그를 죽여야만 해"라며 살해를 다짐한다. 어머니는 무기력하며 이성을 자제할 줄 모르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아들의 말만 듣고 광분하며 남편의 머리를 때리고 신발로 치는가 하면 부엌에 들어가 접시.전기톱 등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며 욕설을 퍼붓는다.

'미스터 브라운스톤'에서는 증오의 대상이 교사다. 17세 고교생 3명은 수학교사 브라운스톤을 "기생충"이며 "강간범"이라고 말한다. 내용의 3분의 2 이상은 교사에 대한 욕설이다. 가짜 운전면허증으로 카지노에 들어간 이들은 슬롯머신 게임을 하며 "우리 애들에게 피를 흘리게 한 것처럼 그가 피 흘리는 것을 보고 싶다"며 살해를 꿈꾼다. 이들은 카지노에서 거액을 따지만 브라운스톤에 의해 카지노에서 끌려나오며 그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붓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조씨와 함께 작문 수업을 들었다는 스테파니 데리는 "그의 희곡은 병적이고 기괴했다"며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작품에 대해 질문해도 조씨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씨의 작품을 읽은 네티즌은 교수나 상담원 등 학교 측이 그의 정신상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데 대해 한결같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들은 "이 같은 글을 보고도 학교가 아무 손을 쓰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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