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소유' 미 대선 이슈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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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으로 총기 규제에 관한 논쟁이 2008년 미국 대선의 핵심 이슈로 떠오를 조짐이다. 국민의 총기 소지를 헌법으로 보장해 온 미국의 독특한 상황이 이번 참상의 근본 원인이 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 부딪히는 찬반 여론=다이안 파인스타인(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상원의원은 18일 "이번 사건이 미국에서 총기 규제를 상식화하려는 노력에 불을 지필 것"이라고 말했다. 총기 폭력 방지를 위한 브래디 운동을 펼쳐온 폴 헬름키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총기 규제 운동을 강력히 펼쳐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뉴욕 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광범위한 총기 소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총기는 대략 2억5000만 정으로 추산된다. 미국 인구가 약 3억 명인 점에 비춰보면 거의 인구 한 명당 한 정꼴이다. 미국은 총기 사고로 매년 3만 명 정도가 사망하고 있다.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은 한동안 주춤했던 정치권의 총기 규제 논의에 기름을 부을 전망이다.

그러나 총기 소지 옹호론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공화당 차기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16일 "이번 사건이 수정헌법 2조에 대한 내 견해를 바꾸지는 않았다"고 총기 규제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1791년 비준된 미국의 수정헌법 2조는 '총기를 보유하고 간직하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매케인 의원의 발언은 총기 소지를 국민의 기본권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는 공화당의 기본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 민감한 총기 이슈=일부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기 규제 문제가 당장 선거 이슈로 부상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CNN은 18일 "몇 년간 총기 규제는 정치인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총기 규제를 공개적으로 주장할 경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상당수 여론이 총기 규제를 지지하지만 막상 선거에서는 총기 소지 옹호론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투표로 표명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그만큼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총기 규제를 지지해 온 민주당조차 2000년과 2004년 대선 실패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총기 이슈였다는 자체 분석에 따라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해리 라이드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는 "지금은 희생자들을 생각해야 할 때이지 미래의 법률전쟁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최대 로비 단체인 총기협회(NRA)의 영향력도 대단하다. 1871년 창설된 NRA는 46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협회는 거대 총기 회사들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으며 총기 판매와 보유권 옹호를 위해 적극적인 로비를 펼치고 있다. 한 해 쓰는 로비 자금만 1억 달러(약 950억원)에 달한다. 이들의 로비 공세를 당해낼 정치인은 많지 않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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