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쇳물 만드는 용광로 '고로'와 '파이넥스'의 차이는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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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준공식을 앞두고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파이넥스 전경.

주변을 한번 돌아보세요. 아마 쇠붙이로 만든 물건이 하나 이상은 있을 겁니다. 머리핀부터 자동차까지 쇠붙이가 없으면 생활이 안 될 정도입니다. 이런 쇠붙이를 철광석으로 만든다는 것은 알 겁니다. 철광석은 철분으로 된 흙덩어리죠. 이런 흙덩어리를 용광로에서 녹여 쇳물을 만든 다음, 이 쇳물로 자동차 차체용 철판, 냄비를 만드는 스테인리스, 집을 지을 때 쓰는 철근 등 다양한 용도의 쇠붙이 제품을 만드는 것이죠.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용광로는 고로(高爐)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철강업계에선 고로를 대신할 한국형 용광로인 '파이넥스(FINEX)'를 개발했습니다. 국내에 있는 고로는 모두 유럽과 일본에서 온 기술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우리 손으로 용광로 기술을 개발한 것입니다. 이 파이넥스는 지금 시험가동을 하고 있고, 다음 달 말쯤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될 예정입니다.

이를 앞두고 벌써 철강업계는 용광로가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얼마나 쇳물을 잘 생산할 수 있을지 등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답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철강업계가 모두 이목을 집중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시험 과정에선 파이넥스가 기존의 고로보다 더 싸고 좋은 쇳물을 만드는 기술이라는 걸 입증했는데 실제 생산에서도 그렇다면 바로 한국 철강업계의 경쟁력이 확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럼 고로와 파이넥스의 차이점을 알아볼까요. 고로는 말 그대로 '키가 큰 용광로'라는 의미입니다. 석탄과 철광석을 고로의 맨 윗부분으로 끌고 올라가서 쏟아붓는 방식이죠. 쇳물은 고로의 아랫부분에서 뜨거워진 석탄이 철광석을 녹이면서 만들어진답니다. 가장 뜨거운 부분의 온도가 섭씨 1600도까지 올라간답니다. 이때 석탄과 철광석은 각각 덩어리 형태의 코크스와 소결광으로 만들어서 집어넣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루로 만들어진 석탄과 철광석이 고로 안으로 들어가면 고로 밑에서 불어넣는 열풍을 타고 떠다닐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되면 쇳물이 만들어지는 효율이 떨어진답니다. 그러나 원료를 덩어리로 만드는 공정이 대기에 노출된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각종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등 오염 물질이 대기 중으로 퍼진답니다. 대기 오염을 일으키기 십상이죠.

이에 반해 포스코의 파이넥스는 원료를 외부에서 가공하지 않아도 됩니다. 파이넥스는 가루 상태의 석탄과 철광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분말 형태의 석탄과 철광석은 싸기 때문에 일단 원가도 절감되죠.

그럼 파이넥스는 어떻게 원료를 가공할까요. 파이넥스 설비의 핵심은 바로 유동로에 있습니다. 유동로는 4개의 항아리가 연결돼 있는 형태인데, 이곳에서는 가루로 된 철광석이 환원 과정을 거치게 된답니다. 천연 상태의 철광석은 철 원자에 산소들이 달라붙어 있는 산화상태랍니다. 이 산소들을 떼어버리는 환원 과정을 거쳐야 질 좋은 쇳물이 형성됩니다. 철광석은 여러 차례의 환원 과정을 거친 뒤 석탄과 함께 쇳물이 만들어지는 용융로로 들어간답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가루로 된 석탄을 딱딱한 형태로 가공해 성형탄으로 만드는 과정인데요,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화학반응 없이 물리적으로 석탄을 단단하게 만든답니다. 발로 밟아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라는군요. 용융로에서 쇳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고로의 아랫부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답니다.

고로 기술은 100년의 전통이 있습니다. 그만큼 여러 면에서 검증을 받았고 믿을 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기술입니다. 여기에 파이넥스가 대항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포스코도 시험에만 10여 년을 공들였습니다. 파이넥스 공정은 1992년에 개발됐습니다. 그리고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 96년부터 파이넥스 공정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모델 플랜트를 지어 하루 15t의 쇳물을 생산하는 수준으로 시험 조업을 한 뒤 150t까지 늘리며 이모저모를 점검했습니다. 상용화의 가능성이 눈에 들어오자 2003년부터는 포항제철소 내에 연산 60만t급 시험용 파이넥스를 지어서 본격적인 상용화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시험용 파이넥스의 운영을 통해 따져본 결과 건설비는 고로의 92%, 운영비는 83%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결국 2004년 8월 본격적으로 상용화를 위한 150만t급 파이넥스 건설에 들어갔습니다.

현재 전남 광양 제철소에서 운영되고 있는 연산 350만t 규모의 최신 고로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이지만, 포스코가 여기에 거는 기대는 무척 크답니다. 파이넥스의 상용화가 성공하면 파이넥스가 중국 등 신흥 개발국의 제철소에 건설될 새로운 수출 상품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또 정준양 포스코 생산기술부문 사장은 "인도에 건설을 추진 중인 일관제철소에 파이넥스 200만t급 두 기가 들어설 예정"이라며 "인도의 질 낮은 분말 형태의 철광석을 이용하려면 파이넥스가 제격"이라고 말합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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