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미술전 작가·작품 선정 편중 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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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국내 작가들의 해외 진출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은 90년대 들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 같은 해외전의 급속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아직도 미미한 형편이다. 또 일부 작가들이 해외전을「국내 홍보용」으로 악용하는 사례까지 빈번하다.「문화전쟁」으로까지 불리우는 국제 미술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떤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할까.『월간 미술』4월호는 최근 특집「한국 작가들의 해외전을 진단한다」를 통해 해방이후 열렸던 해외전을 분석하고 미술계 각계의 의견을 들어 그 문제점과 진로를 모색해 보았다.
이 특집에서 김달진씨(국립 현대미술관 자료실)의 조사에 따르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열렸던 국내 작가의 해외전은 총2백80건. 80년대의 1백53건, 90∼92년의 43건 등으로 80년대이후 급격히 늘어났다.
또 해외전이 열린 국가를 살펴보면 일본(35%)·프랑스(12%)·미국(11.7%)등으로 일부 국가에 치우쳐 왔으며 특히 일본에 편중되어 왔다. 장르별로 보아도 종합전(49%)·서양화(20 %)·한국화(12.8%)등으로 서양화 부문(종합전의 대부분은 서양화)이 훨씬 많았다.
한국의 현대 미술 작가들이 해외무대에 처음 진출한 것은 지난 57년 미국에서 열렸던『동양 미술전』이었다. 50년대에는 이 전시회를 비롯해 고작 4건에 불과했으나 한국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활발해져 25건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국제 공모전에서의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 김창락 씨가 국내 화가로는 처음으로63년 프랑스의 르살롱전에서 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김환기·이응노씨가 65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명예상을, 남관씨가 66년 망통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는 등 수상이 잇따랐다.
그러나 이 같은 연이은 수상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의 해외전은 출품작가 선정과정과 작품 경향이 편중되어 있고 국내의 재정적·이론적 뒷받침이 부족해 우리 미술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이 같은 문제점은 이번 특집에서 실시한 의견 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 특집은 그동안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던 작가·평론가·화랑 대표 10명의 의견을 싣고 있다. 이 의견 조사의 대상은 작가 박서보·이건용·한규남·김병종·윤영석씨, 평론가 이일·송미숙·이용우·심광현씨, 화랑 대표 김창실씨 등이다.
이들은 우선 각종 국제 공모전 출품 작가 선정을 한국 미술 협회가 주관함으로써 특정작품 경향(서양화·추상)에 편중되어 왔으며 작가 선정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점을 지적했다.
이 같은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권위 있는 평론가·작가·큐레이터 등으로 구성된 별도의 국제 교류전 전담 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통해 서구적 현대 미술 편중에서 벗어나 우리의 독특한 미의식·조형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그 동안의 해외전이 작가 개개인 차원에서 무분별하게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 국제적 경쟁력·성과를 얻기 위해선 국가·기업 차원의 재정적 뒷받침과 평론가의 이론적 연구, 국제적 감각을 지닌 미술 행정가의 육성 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밖에 국제 미술계에 대한 정보의 확보, 적극적인 작가·작품의 홍보가 선행되어야 하며 참가 지역도 일본·프랑스·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제3세계·동유럽 등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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