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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만들기 30여 년|프리랜서 분장사 전예출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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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내 분장의 대부 전예출씨(65)는 지난 79년 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그때는 대통령 취임 전이었으나 기자 회견을 앞두고 얼굴 분장이 필요하다며 전 전 대통령 측근에서 도움을 요청해서였다.
전씨가 분장을 시작하려 하자 정작 전 전 대통령은 손을 내저었다. 『그냥 나가지, 무슨 분장이냐』며 처음엔 어색한지 거부했다.
그러나 측근들이 외국에서는 이렇게 하고 있다며 설득하자 전 전 대통령은 마지못해 응했다. 그러면서 『화장한게 TV 화면에 나타나 도리어 이상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분장사 전씨가 대답하자 그제 서야 고개를 끄덕인 뒤 얼굴을 내밀었다. 분장의 중요성을 권력의 핵심 층에서까지 인식하기 시작했던 시절의 일화다.
분장사 전씨는 이후 80년 말까지 전 전 대통령의 연두 기자 회견과 영부인의 사진 촬영 등 청와대 주인의 공식 행사에 앞서 얼굴 분장을 도맡아 했다.
한국 분장사를 개척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전씨는 원래 분장사는 아니었다. 연극 배우가 그의 인생 출발선이었다.
그가 분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48년. 황해도 황주 남중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연기 서클의 지도 교사를 맡을 때였다. 분장사가 따로 없어 연기자가 직접 분장을 해야 했던 시절이고 전씨는 학생들의 연기를 지도하며 분장을 해 주었다. 평소 미술에 관심과 소질이 있었던 게 보탬이 됐다.
전씨가 연기 서클을 맡은 데는 사연이 있다. 황주 농업 학교·황주 농업 전문 학교를 다니던 학생시절 우익 단체 활동으로 요시찰 인물로 낙인찍혀 자연히 취직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교내 연극 활동으로 다져진 전씨의 연기 재능을 써먹기 위해 노동당 선전 부장이 특채로 발령을 냈다. 학교·직장 등에서 연극이 좋은 선전 도구로 활용되던 체제라 이것이 가능했다는 게 전씨의 설명이다.
그는 연기 지도를 겸한 교직 생활을 하던 중 사상적으로 제약을 덜 받는 배우가 되기로 작정했다. 1949년 정부 산하 단체인 교통 성 극단의 단원이 되면서 연극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그 시절에는 분장에 대한 개념 자체가 지금과 틀렸다. 요즘은 얼굴을 손질하는 정도의 화장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당시는 얼굴 치장은 물론 작품 인물에 맞도록 체구와 외모까지 바꿔야 했다.
몸집이 작은 사람이 뚱뚱하게 보이려면 입고 있은 옷안으로 솜을 많이 집어넣는 것이다. 또 다루는 작품이 대부분 소련 번역극이어서 등장 인물들은 코를 크게 만들어 붙이는 등 한국인의 외모와 크게 달리했다. 때문에 뒷 얘기도 쏠쏠하게 생겨났다.
한번은 관객 한사람이 화장실에 갔다가 귀신 모양을 한 배우를 보고 놀라 자빠지기도 했다. 한 여름 밤 출연 배우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입고 있던 옷의 일부를 벗었는데 그 형상이 흐트러진 가발과 어울려 귀신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전씨는 50년 자유로운 연기 활동을 위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북쪽과 마찬가지로 남한에서도 배우 스스로 분장을 알아서 하던 분위기여서 그는 자신의 분장 실력을 십분 발휘, 동료들의 손을 덜어 주었다.
본격적인 분장사가 탄생한 것은 지난 55년께. 영화 『의사 안중근』에서 전씨가 분장사로 발 벗고 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 작품 당 분장 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급됐기 때문에 이를 정식 분장사의 효시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씨는 이어 61년 KBS·TV 프로그램 제작에 연기자 겸 분장사로 참여했다. TV에 분장사가 등장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전씨는 덧붙였다.
그 뒤로 그는 TV 드라마·오페라 공연·CF 촬영 등 숱한 분야에서 분장을 담당했고 지난 80년 서울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는 12명의 분장사들을 이끌고 각국 미녀들의 분장을 해주기도 했다.
분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며 장관·시장 등 이 TV 출연을 앞두고 전씨에게 분장을 받은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그는 63년 TBC, 80년 KBS를 거쳐 88년부터 줄곧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몇몇 대학의 연극 영화과에서 분장 강의를 한 그는 이론과 실기를 함께 갖춘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분장을 속임수로 규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원하는 모습을 얼마나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느냐가 분장 술의 초점이기 때문이다.
조명 아래서 빛이 반사되지 않은 채 사진이 잘 받도록 해야 하며 작품 속의 인물과 맞아 떨어지게 끔 자연스런 분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비하거나 날카로운 인상을 부드럽게 바꾸는 것이 분장이라고 전씨는 말했다.
분장이 단순히 미술적인 감각을 필요로 하기보다 관상·인체 해부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의 분장사는 우리와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경우 1920년대 초 영화 산업의 발달과 함께 분장사란 직업이 일찍 자리를 잡았다. 이들에 대한 예우 역시 괜찮은 편이다.
할리우드의 전속 분장사가 받는 평균 연봉은 5만∼10만 달러 수준이며 베테랑은 그 이상을 챙긴다. 전문 기술이 필요한 특수 분장은 작품 단위로 분장 료를 계산하며 일반 분장보다 단가가 훨씬 높다는 게 전씨의 얘기.
국내 분장사의 봉급 수준도 이제는 많이 좋아져 특수 분야를 뺀 일반 분장 료는 미국 할리우드 수준에 이르렀다고 그는 귀띔한다.
「천의 얼굴을 만드는」분장사 인생 30여 년. 요즘도 그는 짬짬이 분장 일을 하면서 TV드라마에 단역으로 얼굴을 내밀며 연기자 생활을「즐기고」있다. 또 이화여대 부근에 조그마한 분장 원을 차려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분장 관련 교재를 발간하고 5백∼6백 명에 이르는 전국의 분장사들이 추진하는 분장사 협회 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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