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장관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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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東京)의 데이코쿠(帝國)호텔에선 지난 10일 저녁 일부 한국 인사와 일본의 정부.공공기관.경제계.언론계 인사 3백여명이 참석한 '한.일 우정의 밤' 행사가 열렸다. 주일 한국대사관.한국문화원.한국관광공사가 한.일 교류 증진을 위해 매년 연말에 마련하는 큰 행사다. 일본 측 주요 인사는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국토교통상 등이었다. 행사는 국악 연주.식사 등으로 두시간 넘게 매끄럽게 진행됐다.

그런데 마지막에 어색한 장면이 발생했다. 한국 측의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한국의 뇌물 스캔들'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는 한국 호텔 숙박권과 김치 등이 경품으로 나와 있는 추첨행사가 끝난 후 인사말을 하면서 느닷없이 "오늘 결과가 좋았다. 한국에서는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은 일로 시끄럽다"고 말을 열었다.

'뇌물'이란 단어에 순간 연회장은 썰렁해졌다. 李장관은 "뇌물은 주어서도 받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오늘은 한.일 문화 교류에 공이 큰 문화청 문화교류과장님, 총무성 담당과장님, 국토교통성 담당 국장님들이 당첨됐으며 (우리로서는) 합법적으로 감사를 표하게 돼 매우 만족한다. 흑막은 없다"고 말했다. 李장관은 "모든 분이 내년에도 큰 복을 받기를 기원한다"며 인사를 끝냈다.

물론 李장관은 딱딱해질 수 있는 인사말을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뇌물'얘기를 섞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해 공식 행사에 참석한 장관이 일본인들 앞에서 굳이 모국의 치부를 인사말의 재미 소재로 활용해야 했을까. 도쿄에 주재하고 있는 한 한국인 참석자는 "李장관은 제3국 사람인가"라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오대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