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손 안벌리면 중기발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코오롱 이동찬 회장 회고록 『벌기보다 쓰기가…』 펴내
『일제시대에는 학도병으로 나가 생명을 건지기 위해 일본교관에게 잘 보이려했고 해방후에는 빨찌산을 토벌하는 특경대장을 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에는 별다른 육성책을 세울 필요가 없다. 아예 공무원들만 기업에 들락거리며 손을 벌리지 않으면 중소기업은 발전할 것이다.』
코오롱그룹 이동찬 회장이 고희를 맞아 자신의 살아온 길을 담담하게 회고한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를 펴냈다.
최근 재벌총수들의 회고록 출판붐이 일고 있지만 아픈곳을 건드리지 않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오래 살았다』는 첫 문장처럼 사업가로서 5·16직후 부도를 내고 잠적했던 일,단 한번이나마 술집여자와의 외도,경총회장과 농구협회장으로서의 비화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
나일론과 섬유산업의 외길을 걸어온 이회장은 『80년대 초반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몰아붙일때가 가장 가슴 아팠다』고 털어놓고 『자유당 정권때 정치에 뛰어들까 생각했지만 부친(이원만씨)이 3선의원을 지냈고 기업을 일으키는 것도 보국이라는 생각으로 외길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했다.
5공때 청와대가 김종필씨와 코오롱의 인척관계를 들어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을 알고 건강한 몸에 병을 얻기도 했다는 이회장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전두환 대통령이 「금메달을 딸수 있겠느냐」고 다정스레 물었을 때야 가슴을 쓸어내렸다』며 정경의 마찰음으로 불안해하는 기업가의 마음을 그대로 내보였다.
숙부(이원천씨)와의 경영권다툼으로 인한 내분,코오롱건설 매입때의 일화등 아픈 구석과 함께 장영자사건때 검찰의 조사를 받게된 경위까지도 고백록에 담은 이회장은 『재벌이 죄벌이 되어서도 안되지만 국민들과 근로자도 결국 대기업은 국가재산이라는 생각에서 애정을 보여줄때 신명나는 기업가정신을 끌어낼 수 있다』고 외길 기업인생에서의 섭섭함을 털어놓았다.
이제 정상에서 내려가는 인생이라는 이회장은 『크지는 않지만 이만한 기업군을 일구고 평안한 가정을 꾸려왔으니 헛살지는 않은 것같다』고 자신의 인생을 나름대로 평했다.<이철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