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선거개입 물증 잡았다”/외압의 실체와 수사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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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도청기갖고 8명 1개조로 구성/수첩엔 현직각료·5공인사 명단/예외적인 전격구속… 검찰수사에 관심
서울 강남을선거구 민주당 홍사덕후보에 대한 비방유인물을 몰래 뿌리던 안기부직원 4명이 붙잡힘으로써 선거운동 막판 분위기에 큰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그동안 안기부등 관권에 의한 선거운동 개입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면서도 객관적 물증이 드러나지 않아 「공방차원」에 머물렀으나 이번 사건으로 기관의 여당후보에 대한 음성적인 지원이 증명된 셈이다.
특히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호용씨와 오한구·정창화후보 등은 안기부가 자신들의 선거운동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방해했다고 주장해왔으며 권정달·이주일씨 등의 출국에 개입한 「외압」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혹을 사게됐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안기부가 누차 천명한 정치불개입과 정치인 불사찰 공언의 설득력이 약하게 됐으며 총선이후에도 안기부의 위상과 관련,시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사건이 야기할 파장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최선의」 수사방법을 짜내는데 고심하고 있다.
일반선거사범 처리와는 달리 초동단계부터 직접 수사에 나선 서울지검 공안1부는 일단 비방유인물 살포의 사실관계를 확인한뒤 한기용씨등 현행범 4명을 21일중으로 구속하는 기민성을 보였다.
21일 새벽 공안1부 전검사가 출근한 서울지검은 수사방향 및 완급 등에 대해 검토했으나 현행범 4명의 신병처리가 빠를수록 사태수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서둘러 구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은 그러나 사건의 진상·전모를 밝히겠다는 원론적인 답변 이외엔 추가수사 내용·방향 등에 대해서는 신중하다.
검찰은 유인물 제작·배포경위,유인물 내용의 출처,안기부 상층부의 지시나 타후보의 사주여부등에 대해서는 아직 「수사중」이라는 이유로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고있다.
다만 검찰은 현재까지 수사에서 『배후가 없으며 친구의 부탁을 받은 단독범행이었다고 진술했다』『안기부에서 유인물을 가져왔다고 한 것은 끌려간 민주당사무실에서의 공포분위기 때문이었다고 번복했다』고 밝히고 있다.
안기부가 이 사건 발생직후 『안기부가 조직적으로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공식적 입장을 밝힌 것도 검찰수사에 제약으로 작용할 소지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인물을 배포한 4명 모두 안기부의 같은 과 직원임이 밝혀진 이상 상부의 조직적인 개입이 의심받게된 상태지만 한씨등 4명의 구속이후 24일 선거가 끝날 때까지 수사가 지연될 가능성도 없지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민주당원들에게 붙잡힌 안기부 요원들의 소지품에는 도청기,무전기,저명인사들의 이름·차량·전화번호 등이 적힌 수첩이 있었으며 전우경씨가 가지고 있던 안기부 대공수사단 조직메모에는 이들 4명이 8명으로 구성된 같은 팀에 소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 19일 국민은행 목동지점에서 발행한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6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로 2㎝,세로 2.5㎝,두께 1㎝ 크기로 사무실탁자·책상 등에 쉽게 부착할 수 있는 도청기도 지니고 있었다.
또 이들의 수첩에는 재야단체명부와 정부 각부처장관·국회의원·저명인사 등의 차량번호·차종이 적혀있었다. 이중에는 정남·봉두완·김용갑씨,정해창 대통령비서실장·조완규 교육부장관·이상옥 외무부장관 등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한국복지사회발전연구소연구원」이라는 위장 명함도 소지하고 있었다.
이들을 붙잡은 민주당 홍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은 『이들이 홍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아파트단지에 뿌리고 다닐때 순찰차가 따라다녔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부분도 논란이 될 것 같다.
한편 안기부직원이 배포하던 흑색유인물은 자칭 홍후보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는 전비서 「지선엄마」 이름으로 「홍후보의 문란한 여자관계」를 편지지 3장에 진술한 것이다.
『영원히 나 혼자만의 비밀로 묻어두려고 했지만 인간이하의 배신자 홍사덕이 또다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는 소식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 짓밟힌 저의 과거를 고백합니다』로 시작되는 이 유인물은 홍후보가 비서였던 자신과 자신의 친구는 물론 11대 국회의원 당시 다른 의원들의 여비서 2명,돈많은 가정주부·모대학 음대교수 등 많은 여자들을 농락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유인물은 또 홍후보가 자신이 옷가게를 해 매달 번돈 4백만∼5백만원을 모두 갈취했고 대부분의 정치자금을 여자들로부터 뜯어내왔다며 공개청문회나 법정에서도 증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김석기·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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