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FTA 타결, 자동차·섬유 "맑음" 농축산업 "흐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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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뒤 김종훈 한국 수석대표(右)와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가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2일 타결됐다. 앞으로 국회가 비준 동의하면 협정이 발효된다. 한.미 FTA 협상 타결의 의미와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공부한다.

◆FTA란=FTA(Free Trade Agreement)는 뜻이 맞는 두 나라 또는 지역 사이에 존재하는 관세 등 무역장벽을 없애 무역 자유화를 실현하기 위해 맺는 특혜 무역협정이다. FTA의 이론적 바탕은 영국의 경제학자 리카도(1772~1823)가 주장한 비교우위론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모든 재화에서 절대우위(또는 절대열위)에 있더라도 상대적으로 효율성이 높은 산업을 전문화해 교역하면 두 나라 모두에 이익이 생긴다는 이론이다.

FTA가 체결되면 시장이 확대돼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의 수출과 투자가 촉진되고 무역이 더 증진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으나, 협정 대상국보다 경쟁력이 낮은 산업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2003년 2월 칠레와 처음 FTA를 맺었다. 2005년 8월에는 싱가포르, 같은 해 12월엔 스위스.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으로 구성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각각 체결했다. 따라서 한.미 FTA는 우리나라의 네번째 자유무역협정이다. 캐나다.멕시코.중국.일본 등과도 FTA를 논의하고 있다.

◆한.미 FTA 주요 내용과 기대 효과=협상 분야는 공산품과 농업.서비스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자동차 등 공산품의 경우 양국은 예외 없이 관세를 모두 폐지하기로 했다. 그 가운데 94%는 즉시 또는 3년 안에 없애는 조기 철폐 대상이다. 농업과 서비스 부문은 일부 예외를 인정한다. 우리나라가 제안한 쌀과 미국이 안보 목적으로 제시한 해운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또 큰 타격이 예상되는 농산물 등 민감한 품목의 경우 개방 수위를 낮추며 상당한 구조조정 기간을 둔다. 예컨대 쇠고기.고추.명태 등의 관세 철폐 시기는 15년, 배.사과 등은 20년 뒤로 미뤘다.

이번 협정이 발효되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인 미국과 교류 증대로 기술 혁신, 기업 환경 개선, 외국인 투자 증대 등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관세가 철폐됨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은 중국.일본 등 경쟁국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미국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행정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투명성 조항 등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는 제도 도입도 이번 협상의 성과다.

◆이득을 보는 산업=수혜가 예상되는 업종은 자동차.섬유.철강.전자 등이다. 자동차 산업은 한 해 1700만 대 규모의 세계 최대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게 됐다. 승용차의 경우 현재 주요 경쟁자인 일본 제품보다 가격이 3% 정도 낮으나 관세(2.5%)가 폐지되면 미국 시장에서 5.5% 이상 가격 경쟁력이 생기게 된다. 평균 관세율이 10. 9%에 달하는 등 높은 관세에 시달린 섬유도 긍정적 효과가 예상되는데, 특히 관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급 제품이 더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업계는 자동차와 조선 부문의 미국 수출이 확대돼 간접적인 수출 증가 혜택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업종은 제품별로 손익이 엇갈릴 것으로 추정된다. 주력 상품인 반도체와 휴대전화는 90년대 후반부터 이미 무관세 혜택을 보고 있다. 따라서 이득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데다 우리나라의 관세 장벽(8%)이 사라지면 연 3000만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가 예상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관세 철폐가 예고된 LCD 모니터와 디지털 TV 등은 수출 확대가 점쳐진다.

◆손해를 보는 업종=손실이 예상되는 대표적인 업종은 농축산업이다. 상대적으로 값싼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이 늘어 누적 손실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농축산물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8.5%에 이른다. 특히 수입 비중이 큰 축산물(19.3%)과 과실(11.0%), 채소(9.6%) 등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제조업 중에서는 의약.음식료.정밀기계 등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음식료는 미국이 값싼 자국산 원료를 사용하므로 우리의 경쟁력은 떨어진다. 신약 특허 기간 연장 등으로 국내 제약업체 피해도 불가피하다. 반도체 제조장비나 의료용 기기와 같은 정밀기계 산업도 기술력 부족으로 시장의 상당 부분을 내주게 됐다. 영화.방송 등 문화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한 해 73일인 스크린쿼터(한국 영화 의무상영 일수) 비율이 더 줄고, 지상파 TV의 외국 제작물 방영이 늘어날 수 있다. 제조업보다 대미 경쟁력이 취약한 서비스 분야는 해외 기업의 국내 진출 확대로 구조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남은 과제=FTA 체결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과 일부 서비스 산업에 대한 합리적인 구조조정과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 손해를 보는 산업 부문 종사자의 불만이 커지면 FTA가 기회가 아닌 위기로 둔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세계적 기준의 법과 제도를 만들어 외국자본 투자나 선진 기술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 정치권도 국회 비준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장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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