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 과연 안전한가|이창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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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사철이다. 좀더 좋은 집, 보다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옮기려는 증산층의 소박한 꿈이 아파트 건설비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선거공약과 맞물릴 만큼 되었다.
우선 사회적 신분을 집의 평수로 나타내려는 악습이 더욱더 넓은 아파트를 차지하게 만드는 촉진제 구실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 평수의 조작이다.
건설회사는 실 평수보다 넓은 것처럼 보이는 속임수를 써서 건설비를 많이 옭아내기 위해 ○○평형이라는 낱말을 만들어 냈고, 입주자는 큰집에서 사는 것 같은 인상을 남에게 줄 수 있다는 허영심에서 ○○평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무당국은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호재가 되고 있어 이같은 거짓이 성행하게 되었다.
마치「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모도 재미본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야말로 속임수와 허영심과 증세를 주제로 한 엉터리 3중주가 이 땅에서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철근 띠 기둥 만들어야>
최근 원자력 산업의 기술 기준 제정에 관여하게 된 필자는 그간 수집한 국내의 자료 중 토목 건축 분야의 안전성 실태를 보고 무척 놀랐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자력 안전성에 비해 너무도 허술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원자로가 들어있는 커다란 철제 구조물을 우리는 격납용기라 하며 그것을 보호키 위해 그 외곽을 1·2m두께의 초강도 철근 콘크리트 벽이 감싸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태풍·지진·LPG 탱커의 폭발, 심지어는 보잉747 여객기의 엔진이나 음속으로 추락하는 F16전폭기의 충격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하고 있다.
그에 비해 요새 우후죽순 격으로 하늘높이 올라가고 있는 고층 아파트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건축 학계에서도 우려의 소리가 높다. 한때 그것이 불량 레미콘 소동으로 표면화된 일은 있으나 정작 콘크리트 자체가 목적하는 구조의 건전성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적으로 논의된바 없다.
『건축사』라는 학술지에서 작금의 고층 아파트 설계와 이에 사용되는 자재의 품질, 그리고 시공 실태를 개탄한 전문가의 글을 읽었다.
그 많은 아파트를 단기간에 건실키 위해 불과 2, 3명의 기술진이 1주일 안에 연건평 몇만평의 아파트 구조 설계를 해 치우고, 또 분양가가 정해져 있어 더 싸게, 더욱 값싸게만 부르짖다 보니 돌팔이 기술자에게 일이 돌아가 불법이든, 불량이든, 부실이든 싸고 위험한 건물이 마구잡이로 건설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블록이나 벽돌로 벽을 쌓고 그 위에 콘크리트 슬라브를 얹으면 훌륭한 2층집이 된다. 그러나 고층일 경우 그런 조적조 내력벽은 무게를 감당치 못하는 물리적인 한계에 다다르게 되므로 이를 극복키 위해 벽에 철근을 넣고 그것을 단단히 묶어 띠 기둥을 만들어야 한다.
기둥 대신 벽체에 무게가 얹히는 30층 이상의 아파트에서는 벽 두께가 20cm이상은 되어야 하고 또 위아래로 내려간 철주근을 다른 철근으로 묶어 띠 기둥을 만드는게 원칙이다.
따라서 벽 두께가 15cm밖에 안되거나 철근수가 모자라거나 띠 기둥이 없으면 불법 불량 건축물이 분명한데 실제로는 15cm 내력벽을 띠 기둥 설계 기준에 맞게 설계한 도면을 볼 수 없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15cm의 얇은 벽체에 띠 철근을 붙들어 매면 콘크리트를 비벼 넣기도 힘들고 또 그렇게 얇은 단면이 제대로 양성되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표면 피복 비율이 커 중성화 속도가 빨라 수명이 짧아진다.
특히 콘크리트 칠때 인부들이 작업하기에 편하다고 물을 너무 많이 붓게되면 콘크리트 강도를 약화시킨다.
또 다음 공사에 쓴다며 콘크리트가 굳기도 전에 거푸집을 떼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래선 고층 건물이 온전할 수 없다.
띠 기둥의 중요성과 그것을 철근 (주근) 에 매지 않으면 얼마나 위험한지는 상식적으로도 이해된다.
볏짚을 한줄기씩 세워 놓을 수는 없으나 짚을 서로 묶어 볏단을 만들면 가능하고, 빗자루도 쇠줄로 꽁꽁 묶으면 단단해진다는 것이 바로 띠 기둥의 원리다.
띠 기둥의 굵기·간격·각도·정착 방법,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기둥이나 벽체의 강도 증가는 많은 실험으로 입증돼있다. 김일성 독재 정권이 그토록 오래 유지되는 것은 인민이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하게 띠 기둥처럼 단단하게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요즘 짓는 고층 아파트에서는 응력 해석에서 인자를 일부러 조작해 벽체 수직 철근이 기준상의 최소 철근비에도 미달하는 내진 설계도 있다고 한다.

<원전 건설 참고토록>
그것이 지진이나 강풍에는 커녕 평상시의 연직하중에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니 사태는 심상치 않다. 더 심각한 일은 그나마 시공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잘못된 일을 들춰내 돌을 맞게 하려는 뜻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앞으론 그런 엉터리를 없게 하고, 보다 정직하고 합법적으로 시공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 건설업자와 구조 설계자들이 원자력발전소의 설계와 건설 현장을 직접 한번 가봤으면 싶다. 그러면 그곳에서 안전성이 얼마나 중시되고 있는가를 실감하게 될 것이고, 고층 아파트 설계와 시공에도 큰 참고가 될 것이다.
제2의 체르노빌원전 사고가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지 않는 것 못지 않게 또 다른 와우 아파트 붕괴 사고 또한 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원자력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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