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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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민속신앙에는 「금기」가 수없이 많다. 날짜와 달(월)에 따라 해서는 안되는 일과 꼭 그 날짜에 해야만 좋은 일들이 있다.
영·호남 지역에 널리 유포돼 있는 속신의 하나. 중부지방에서는 8월이 되면 문을 새 문종이로 발라 추석맞이 집단장을 하나 영·호남에서는 8월문바르기를 금기시해 7월에 한다. 이유는 8월에 문을 바르면 집안에 우한이 그치지 않고 도둑이 든다는 속신때문이다.
부부관계에 대한 속신도 꽤 많다.
음력 5월5일 단오날과 11월 동지날은 동침을 금하고 있다. 단오날은 만물의 모든 기운이 치솟는 때라 부부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동지날은 호랑이가 교미해 평생 한마리 새끼밖에 낳지 않는 날이기 때문에 이 날에 관계를 하면 자손이 귀하다고 한다.
그러나 칠석날에 잉태한 아이는 효자나 열녀가 된다고 해 부부동침의 대길일.
우리 속신에서 뿌리깊게 전승되면서 가리고 있는 택일의 하나는 지금도 흔히 이사할때 피하는 「손」이 들어있는 날이다.
이밖에 음력으로 매달 5·14·23일은 패일」로 액운이 따르는 아주 불길한 날이다.
하동지방에서는 정월의 패일은 「삼패일」이라고 해 여인들이 바느질·빨래·머리빗기 등을 절대 삼간다. 이런 금기를 어기면 가산이 기운다는 것이다.
초겨울 지붕을 이을때 이날 이으면 화재가 나든지 집안이 망한다고 해 「천화일」(자·오·묘·유일)을 피했고 6월에 문병하면 환자의 병이 낫지 않는다는 속신도 널리 퍼져 있었다.
지금도 영·호남 지역에서는 음력 2월은 「바람달」이라 이때 결혼하면 깨지기 쉽다고 혼인을 기피,예식장이 개점휴업이라고 한다.
다양한 속신들은 모두 나름의 존재이유와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과학적 안목에서 보면 허황된 측면들이 많다.
지난날의 농경시대 민속신앙을 그대로 맹신하기에는 시대가 너무도 변한 만큼 속신은 그저 아쉬운 미련 쯤으로 간직해야 할 것 같다.<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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