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배웁시다(권영빈 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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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 어머니가 국민학생 아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위해 같은반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저녁식사를 차렸다. 음식도 뷔페식으로 너댓가지 장만하고 이를 각자의 자리에 나누어 놓고는 남은 음식은 모자라면 더 먹으라고 식탁중간에 모아 두었다.
부엌을 드나들던 어머니가 아이들의 식탁을 보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각기 나누어 준 음식은 그대로인데 식탁 중앙의 음식들만 열심히들 각자의 접시로 옮겨가며 먹고있는게 아닌가.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음식을 나누어 주었는데 왜 애써 먼곳의 음식부터 먹고있느냐고 묻자,이미 나누어준 음식은 내몫이니 주인 없는 음식부터 먼저 먹는게 당연한 순서가 아니냐는게 아이들의 대답아닌 반문이었다.
○탈법온상 선거판
음식이 애초부터 모자란 것도 아니고 평소에 먹지 못한 진기한 음식을 차린 것도 아니었으며 초대된 아이들이 식탐할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이를테면 그들 또래의 식사방법이고 음식문화이며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아이가 길거리에서 천원짜리 한장을 줍는다. 횡재를 했다고 기뻐 좋아한다. 용돈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니지만 제 몫 아닌 남의 몫을 먹고 가진다는게 마냥 즐겁고 기쁜 일이다.
내몫이 아닌 남의 몫을 가진다는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임을 아이의 아버지가,아이들의 어른들이 몸소 모범을 보이며 실천하고 가르쳤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있어 남의 몫 차지는 횡재고 환희며 생활방식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당의 청년봉사단 발대식에 참가했던 대학생·재수생을 포함한 1천여명의 청년들이 주최측에서 2만5천원의 일당을 주지 않는다고 항의 소동을 벌였다.
당의 정책 정강에 동조해서도 아니며 자신의 뜻에 맞는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위한 자원봉사도 아니고 오로지 줄서서 사람 머릿수 채워주고 피킷 한번 들어주는 손쉬운 일로 일당을 벌겠다는 청년들의 숫자가 단번에 몇천명 모이고 그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항의 소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지구당 개편대회니,당원단합대회니 온갖 형태의 탈법적 선거운동이 도시와 시골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때마다 선물꾸러미에 현금이 거래된다는 소문이다. 수건 한장을 얻어가기 위해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생활에 보탬이 결코 될수 없는 1만원권 한장을 받기위해 마치 밀수꾼들처럼 은밀히 거래한다. 심지어 대회장에 옮겨온 화환의 꽃까지 뜯어가야 직성이 풀리고 본전을 찾아가는듯 다투어 경쟁을 벌인다.
어린이의 식탁예절에서부터 선거판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추악한 행태가 하나 다를것 없이 남의 몫을 제것으로 챙겨오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그것이 많고 적든,액수가 크고 작든 관계치 않고 오직 남의 물건과 돈을 줍고 챙겼다는데 기쁨을 맛보고 있다.
○내몫 챙기기 혈안
누구나 알고있듯,우리네 살림이 이젠 살만큼 되었고 일자리가 없어 선거운동이나 유세장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아니다. 제발 와서 일해달라는 기업과 공장이 20여만명의 자리를 비워두고 있고,도시근로자의 가구당 월소득이 1백만원에 이르는 오늘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가난하고 못살던 때보다 더 부끄러움을 모른채 유권자들이 손을 벌리고,생활 수준이 나아진만큼 요구하는 액수도 높아져 가고있다.
왜 이러한 추악한 사회현상이 계층마다 세대마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성행하고 있는가. 여러 이유를 들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3D현상에 정당과 후보가 유도하는 해방후부터 지금까지의 금권선거풍토도 꼽을수 있다. 여기에 최근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정당간의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민주대 반민주의 분명한 대결구도가 아니고 기왕 그게 그것이라면 돈주고 선물 안겨주는 쪽에 관심을 보이겠다는 유권자의 체념심리를 반영하는 한 단면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여러 이유들보다 우리사회에 가장 심각하고 치유하기 힘든 병리현상이 부끄러움을 모르게된 사회풍조라고 보고 추악한 선거풍토 또한 이런 부끄러움 없는 사회현상의 한 단면이라고 파악하고 싶다.
부끄러움을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부끄러운 행동임을 깨우쳐주는 사람도,학교도,단체도 없다는데 우리 사회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가. 자신의 긍지를 살리지 못하고 남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일,자신이 땀흘려 일하고 노력해서 번돈으로 떳떳이 살아가지 않고 남의 몫을 흘겨보고 빼앗고 훔치며 도둑처럼 살아가는 일,절약하지 않고 분수에 넘는 과소비를 하면서 흥청대는 건달들의 삶­. 이 모두가 부끄러운 인생이고 지탄의 대상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고치려 들지 않는다.
권력과 황금에 눌려 노예처럼 30여년을 살았고 어떤 방법으로든 돈만 벌면 대접받는 도둑의 윤리가 공공연히 사회윤리로 자리잡으며 내가 번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누가 뭐라느냐는 건달의 사회풍조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사회,우리의 선거풍토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이상 노예처럼,도둑처럼,건달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
○만연된 건달풍조
우리의 아이들에게,부끄러움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무엇이 부끄러움인지를 단단히 가르쳐 주는데 이번 총선의 의미를 부여토록 해야한다.
수오지심은 예지서이라 했다. 부끄러움이 예절의 시작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란 노예와 도둑과 건달들이 모여사는 사회임을 우리모두가 동의하면서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 곧 예의와 질서의 회복이고,민주화의 바른 길임을 이번 선거에서 정말 확인 한번 해보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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