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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느낌] 너냐? 외딴섬 연쇄살인 범인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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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감독:김한민 출연:박해일.박솔미.성지루

장르:스릴러 등급:15세

20자 평: 추리극으로는 정교하지 않고, 공포물로는 힘이 있다.

추리극으로 홍보되고 있는 '극락도 살인사건'은 어쩌면 공포영화로 봐야 오히려 만족도가 높을 듯하다. 이 집단 살인극의 범인이 누구인지 결말에 드러난 대로 다시 짜맞춰본다면, 앞서 보여준 전개에서 정교함과 치밀함을 높이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연쇄 살인이 빚어내는 음습한 긴장감과 등장인물들이 겪는 공포는 꽤 힘이 있다. 이 공포에는 적어도 실체가 있다. 모티브만 반짝이다 용두사미가 되곤 했던 지난여름의 국산 공포물들보다 나아 보이는 대목이다.

추리극이라고 본다면, 쉽게 연상되는 것이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이다. 일종의 밀실에서 벌어지는 살인극이라는 점이 닮았다. 주민이 17명뿐인 외딴섬에 잔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하나뿐인 무전기는 고장난 상태다. 모두가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곧이어 시체로 발견된다. 새로운 살인이 이어진다. 누구든 범인이 될 수 있는, 고립된 세계다.

이 영화는 기이한 부조화를 원동력으로 이야기의 힘을 발휘한다. 섬사람들이 구사하는 진한 사투리는 자칫 이 섬의 분위기를 낙관하게 만든다. 게다가 온 마을이 둘러앉아 벌이는 최고령 노인(김인문)의 생일잔치는 제법 흥겹다. 그런데 순박하고 가족적인 것은 외양일 뿐, 점차 저마다 수상한 모순이 드러난다. 사냥이 생업이면서도 불가의 도인 같은 사내(김병춘)가 있는가 하면, 남달리 모자라 뵈던 잡일꾼(성지루)이 눈빛을 빛내며 똘똘한 추리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보건소장(박해일)과 여교사(박솔미)의 관계도 묘하다. 인텔리이자 외지인이라는 점에서 통할 듯한데도 통하지 않는다.

특히 이상한 점은 섬사람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다. 단발성 살인이 아니라는 것이 짐작되면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색출하는 게 정석일 텐데, 한편에서 사건을 일단 덮어 두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영화의 장점은 여러 등장인물을 고루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점이다. 인물의 일관성이나 정교함은 떨어져도, 의심과 의심이 교차되면서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길을 제대로 달린다. 유일한 아낙네(유혜정)나 어린아이 두 명까지 어딘가 의심스러워 보일 정도다. 그 와중에 우발적인 사고사가 더해지면서 이 섬의 지옥도는 점입가경이 된다. 결말 직전까지, 화면에는 맹렬한 힘이 묻어난다.

이 힘은 막판에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대목에서 맥이 풀린다. 지극히 설명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이라서 굳이 '반전'이라는 이름의 충격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이에 따르면 이 지옥도의 원죄는 물욕이다. 첫 번째 살인이 화투판에 걸린 돈뭉치에 피를 묻히면서 벌어졌듯 말이다.

요소요소 뜯어보면, 아무래도 공포영화의 인상이 짙다. 환각인 듯 귀신도 등장하고, 영화 내내 음악과 음향 효과가 거슬린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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