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시장 개방 "발등의 불"|국내 업계 자구책이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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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출판 시장 개방이 「강 건너 불」에서 「발등의 불」이 됐다.
재무부는 지난 20일 외국인 투자 금지 업종이던 출판업과 제한 업종이던 서점·인쇄업을 자유 업종으로 바꿔 빠르면 금년 안에 전면 개방키로 「외국인 투자에 관한 규정」 개정 시안을 마련한 뒤 문화부와 세부 사항 협의에 들어갔다.
이 개정시안은 서적 출판의 경우 외국인의 합작 투자는 물론 1백% 단독 투자도 허용하고 있다.
UR협상의 일괄 타결이 크게 볼 때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판단, 쌀 시장 대신 서비스 시장을 양보키로 한 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출판계는 『전혀 대비가 안된 상황에서 전면 개방하면 국내 출판 산업의 몰락을 가져올 뿐』이라며 전문 인력 양성, 유통 현대화 등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개방 시기를 늦추고 개방폭도 단계화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문화부는 국제화 추세에 맞춰 개방은 하되 지금 당장은 안되며 연차적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출판계의 재정 건실화·시설 현대화·기능 다양화 등 국제 경쟁력이 동시에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부는 개방은 1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인 개방 추진 계획을 보면 2001년에 대도시만 개방하고 2002년에 가서 전면 자유화하되 서점은 외국 도서만 취급하도록 제한하고 「외국 간행물 수입·배포에 관한 법률」 등 별도의 장치를 마련하여 외국의 저질 문화 유입을 차단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그러나 국제적인 압력과 재무 부족의 입장 때문에 개방시기는 훨씬 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출판 시장 개방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번역물 위주의 영세 출판사와 중소 서점들.
현재 외국 출판사들 가운데에는 유럽에 본부를 둔 다국적 출판사들과 강담사 등 일부 일본 출판사들이 한국 진출을 바라고 있으며 미국은 도서 유통 시장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간 국내 출판 시장 규모는 약 1조원. 이중 외국인 저작물의 번역 출판 비중은 약 25%로 추정된다. 기술 서적류는 일본 번역물이 주류를 이룬다. 거의 대부분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이 때문에 출판 시장 개방을 앞장서 요구하고 있는 미국보다 일본의 진출을 두렵게 여기는 출판인들이 많다.
현재 국내의 서점수는 약 4천여개. 도서 유통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데다 평균 매장 규모는 겨우 15평. 여기에 현대화된 경영 방식의 대형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국내 서점계는 엄청난 타격을 보게된다.
국내에 진출한 편의점 중 10%정도가 이미 국내 도서를 취급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출판계는 시장 개방을 예상하면서도 대비책 마련에 소홀했다.
개방의 시기를 최대한 늦추면서 일산 출판 단지 조성, ISBN·POS시스팀 조기 정착 등 업계 스스로 마련한 장·단기 경쟁력 배양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길 외엔 국제화 시대에 살아 남을 묘안은 달리 없어 보인다.
대형 서점의 체인화, 중소 서점의 전문화도 시급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제 출판 시장 개방은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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