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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과 정일성의 속궁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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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읽은 '디아스포라 기행'에 인용된 구절이다. 중국 사상가 장자(莊子)의 말이다.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나 평생을 '디아스포라(유랑자)'로 살아온 도쿄케이자이대 서경식 교수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떠올린 글귀다.

아찔했다. 해방 60년이 벌써 지났건만 역사는, 거기에 상처받은 개인은 이리도 힘겨운 것이구나. 그래도 '서로'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바짝 마른 육체를 서로 침으로 보듬는 붕어에게서 삶의 거대한 에너지를 발견했다.

지난주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시사회에서 생뚱맞게, 장자의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 민요, 판소리에 녹아든 남매 아닌 남매 동호(조재현)와 송화(오정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서글픔 때문은 아니었다. 잊혀져 가는 국악의 재발견(사실 영화는 우리 음악을 들려주는 대목에서 상당 부분을 자막으로 처리한다), 전통의 창의적 계승(영화에 나타난 한국미의 발현을 눈여겨보시라)이란 입찬소리와도 관계가 없었다.

기자를 울게 한 건 영화 배경에 깔린 근.현대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고단한 행보였다. 눈먼 소리꾼 송화가 고향 제주도를 등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해방 후 '삼다도'에서 벌어진 좌우 대립에 따른 '살육극' 때문이요, 또 동호가 송화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가까이 가지 못한 건 무엇보다 입에 풀칠을 해야 했던 '생활고' 때문이었다.

송화의 영원한 서포터였던 동호가 송화에게 다가서려고 선택한 길은 중동의 모래밭 건설현장. 1970년대 아내를, 자녀를 위해 사막에서 땀방울을 쏟아냈던 한국의 '아버지'가 단박에 연상됐다. 송화가 '골드스타' 상표가 박힌 소형 텔레비전을 툭툭 치며, 동호가 떠나간 중동의 소식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애면글면 경청하는 장면은 30여 년 전 우리 부모들의 자화상 그대로였다. 영화 속에는 산업화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넘으면서도 정작 안식처 하나 제대로 장만하지 못한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가 줄줄이 펼쳐졌다.

감독 임권택(71)의 지구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100번째 작품이란 연대기적 찬사가 분명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급하게 찍어댔던 초창기 작품을 '쓰레기'라 부르면서도 지금도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수줍은 듯 당당한 그가 동년배, 나아가 젊은 세대를 향해 말하고 싶은 게 알알이 박혀 있었다.

'천년학'에 따라붙는 100이란 숫자에서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 바로 정일성(78) 촬영감독이다. 70년대 말 이후 30년 동안 영화 20여 편을 함께 해온, 세계 영화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기네스북' 같은 기록 말고도 두 노장은 지난 세월 장자의 붕어처럼 서로를 북돋우며 한국의 고달픈 현대사를 증언해 왔다.

좌익 출신의 가난한 집안에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촌스러운' 임 감독, 여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공대를 마친 '세련된' 정 감독을 잇게 한 건 바로 우리네 떠돌이 인생에 대한 애정, 나아가 한국판 이념과 성장의 갈등을 넘어선 용서와 화해였다.

많은 사람이 임 감독의 100번째 작품에 한마디씩 거드는 동안 정 감독은 "내가 나무라면 임 감독은 흙, 내가 낮이라면 임 감독은 밤"이라며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켜 왔다. 또 "이질적인 것만큼 동질적인 것도 없다. 그게 영화의 힘이다"고 말해 왔다. 각자의 아내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는 두 노장의 찰떡궁합. 충무로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주눅 들지 않을 자산이다. 어떤가, 오늘(12일) 개봉하는 '천년학'이 궁금하지 않은가. 젊은이들이 정신 바짝 차릴 사건이다.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