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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 헌금(정치와 돈:8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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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순번놓고 특별당비·인사치레 등 “돈탑 쌓기”/“필요악” 인식… 야 40∼50억설/주간연재
전국구의원 제도는 유권자의 사표를 방지하고 직능대표적인 성격을 도입,직업정치인에게 결핍되기 쉬운 전문성을 보완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정치상황의 변화를 겪으면서 전국구제도는 여당에는 원내 다수의석확보 내지는 거수기의 양산을 위한 편법으로,야당에는 부족한 정치자금의 확보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전국구는 유권자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정당 수뇌부의 「고유권한」쯤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지역구 공천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공천심사위원회나 조직강화특위를 만들어 심사과정을 거치지만 전국구 공천은 아예 여당은 청와대에서,야당은 총재나 대표최고위원의 뜻에 따라 임의로 결정돼도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게 관례처럼 되고 있다.
따라서 여야를 막론하고 전국구의원 희망자의 상당수는 실력자에 선을 대기위해 중간소개자에게 상당액의 알선료를 지불하고 당수뇌부에도 인사치레를 하는 것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당의 경우 야당보다 이런 관행이 다소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전국구후보 발표를 앞두고 재력가나 전직 고위관료·장성들이 전국구로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 세 최고위원을 포함한 당실력자들과의 면담등 막후로비에 열을 올렸다.
당의 국장·실장급 인물들도 몇 안되는 당료몫을 차지하기 위해 전국구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을 찾아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는 「인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최근 민주계와 공화계에서 자파의 전국구몫 인물을 추천하면서 현재 전국구의 이행구(민주계)·김두윤(공화계) 의원의 재공천교섭을 청와대측과 했다 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둘 다 재일교포출신으로 이의원은 김영삼 대표에게,김의원은 김종필 최고위원에게 꾸준히 정치자금을 제공해왔다는 것이지만 청와대에서는 이들의 추천에 대해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당 일각에서는 일부 고위당직자등 영향력을 가진 인사들이 「노후대책」을 마련했다더라는등 잡음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에는 이보다 훨씬 노골적이면서 단위도 크다.
민주당은 현재 지역구 80석을 14대총선의 최저 목표선으로 잡고 있는데 이 경우 전국구 21번까지 당선이 가능하다. 이중 7명은 영입인사로 7명은 헌금자로,나머지 7명은 당기여도가 높은 인물로 균분한다는 방침이지만 영입인사와 당료중에도 헌금약정자가 섞여있어 실제 헌금자는 10명을 웃돌 것이란 전망이다.
헌금자의 경우 순번에 따라 최고 30억원에서 최저 15억원까지 당에 「특별당비」 형식으로 정치헌금을 하기로 돼있고 이 또한 신민·민주계가 4대 3으로 추천키로 합의돼있다.
13대총선 당시 평민당은 1번의 박영숙 부총재를 제외하고 2번부터 10번까지 9명을 헌금케이스로 공천했으며 김대중 총재는 11번을 자임,호남에서의 황색돌풍을 유도한 바 있다.
따라서 신민계에서는 야권통합 이후 전국구 헌금자의 몫이 민주계와의 지분때문에 줄어들게 됐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헌금공천의 경우 공식적인 특별당비 이외에 계파의 수장과 중개자에게 상당액의 인사를 차려야하며 따라서 실질적인 헌금액수는 40억원 내지 50억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매관매직·돈공천 등의 비난여론도 있지만 달리 정치자금을 확보할 수 없는 야당으로서는 총선에서 후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욕을 먹더라도 전국구공천으로 2백억원은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앙선관위도 전국구 정치헌금문제에 대해 『공천의 대가로 정치헌금을 받는 것은 위법이지만 이들이 내는 돈이 당비인지 정치헌금인지는 별도의 해석이 필요하다』는 어정쩡한 유권해석을 내렸다. 결국 선관위도 야당의 공천헌금을 「필요악」 정도로 묵인한 셈이다.
현재 박은태 미주산업 회장과 오호근 전 한국종합금융사장 정도가 영입반 헌금반 케이스로 확정단계며 나머지는 2배수로 압축,헌금약속 이행여부를 지켜본 뒤 결정한다는 것이 민주당측 입장이다.
13대총선 당시 송현섭 의원이 전국구 2번으로 공천된 것도 나머지 헌금약정자들이 마감시간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순위가 앞당겨졌다는 것이며 당선된 뒤에도 나머지 헌금을 내지않고 애먹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약속이행이 최대의 전제조건이란 설명이다.
전국구의원 재공천 불가방침도 현역 전국구의원들과 헌금액수가 맞지 않기 때문이란 소문인데 연청회장인 최봉구 의원과 김영도·김주호·이동근 의원 등은 헌금규모를 놓고 당측과 교섭을 계속해 이중 1,2명은 재공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들은 13대에 전국구로 들어온 뒤 당에서 정치자금이 모자랄 경우 뒷바라지하는등 여러가지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 왔는데 이제와서 다른 헌금자와 똑같은 수준의 헌금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20여명의 당료들도 당선 안정권에 들기위해 치열한 물밑 로비전을 펼치고 있는데 3억원 내지 15억원의 특별당비를 내야 앞번호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다.
이들의 공천헌금은 순수헌금 공천자보다 단가가 떨어지는 대신 당선 가능성도 그만큼 희박할 수 밖에 없다.
「야당의 전국구의원은 감기도 안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야당의 전국구의원들이 중도 사퇴하거나 병으로 물러난 적이 없다. 때문에 예비후보는 금배지를 달아볼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 소액헌금자들은 「요행수」나 뜻밖의 야당바람에 한가닥 기대를 걸어볼 수 밖에 없다.
야당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전국구의 헌금공천은 왜곡된 정치행태이며 국민의 정치불신을 조장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야당에도 정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금흐름이 보장되어 이러한 관행을 없애도록 하는 것이 정치권의 부패를 막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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