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시인들은 가라" 법석거리는 시단정리 촉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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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몇천 명의 시인들로 법석거리는 우리 시단 정리를 위해 『껍데기 시인들은 가라』는 주장이 나왔다.
시인 고은씨는 『문예중앙』봄호에 기고한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끌 덤벙한 시장을 방불케 하는 시단에서 시의 권외회복을 위해 소위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노장층의 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평가는 『누가 친일파였다 든가, 누가 좌익이고 우익이었다 든가 하는 따위가 아니라 시 자체에 대한 평가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씨의 이 같은 주장은 껍데기뿐인 권외를 가지고 시인을 양산해온 노장층이 오늘의 시단풍토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로 전해진다.
『나그네 나그네/내 이름은 자미/흰머리 헝클어져/귀밑을 덮었구나.』
두보의 만년 시 『비가』에 59세의 자신의 심경을 비유하면서 이 글을 쓴 고씨는 이 같은 작업이 있어야만 사회변동기의 세태를 배회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을·정확히 알고 그들로 인해 빚어진 시단의 혼돈을 정리할 매듭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80년대 왜곡된 정치·사회현실에 대한 「유격적·즉결적 대응」을 위해 수많은 참여시인들이 동인지 등을 통해 튀어나왔고 또 순수문학 쪽에서도 문예지들이 앞다퉈 「별과 꽃을 노래하는」시인들을 양산해 부풀대로 부푼 가운데참여·순수, 본격·대중, 프로·아마추어, 그리고 파벌 등이 얽혀 혼돈 상을 보이고있는 것이 현 시단 풍경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함부로 시와 이데올로기를 결부시킬 수 없는 것처럼, 함부로 시를 급격한 여성 주의 적인 서정으로 내몰아 가는 것도 그 배후에는 시의 살아있는 전말을 억누르는 권력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고씨는 시단에 끼어 든 불순한 권력의지를 경계했다. 시와 시단을 오염시키는 그 권력의지를 떨쳐버리기 위해 순수냐 참여냐 따위의 논란도, 한 시인의 전력이나 사상·이념도 떠나 시 자체를 재평가하자는 고씨의 주장은 문단에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그것은 순수문학 진영으로부터 줄곧 문학성 결여를 비난 받아온 참여문학을 이끌어온 고씨의 바로 그 「문학성」을 내세운 순수문학 진영에 대한 역공이면서 또 작품은 잘못 쓰면서 시대상황에 편승하거나 파벌조성에 물든 시인 군에 대한 경종으로도 들리기 때문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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