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경쟁력, 광역화·기능집중서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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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클럽 마드리드 공동 주최로 열린 국제 콘퍼런스의 초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식 기반 경제(Knowledge based Economy)'였다.

이 두 단어가 세계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글로벌 도시들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잣대로 꼽혔다.

'세계화로 가는 도시의 정책'이라는 주제로 지난달 29, 30일 열린 콘퍼런스에 모인 도시 전문가와 세계 주요 도시 시장들은 가장 중요한 도시 경쟁력의 원천을 집적화에서 찾았다.

다시 말해 도시의 기능 집중과 규모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글로벌 도시는 지식산업 소비의 장소인 동시에 생산 현장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의 반응에 빠르게 대응하려면 소비자가 집중된 도시에 입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대학과 연구기관이 집중돼 있어 지식산업 생산자로서 질 높은 인력 공급이 가장 유리한 것도 도시라는 논리다.

이와 함께 도시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도시의 광역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앨런 하딩(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1990년 네덜란드 정부가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을 통합하려 했던 시도도 이 같은 도시 광역화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 프리드먼(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시도 기업처럼 투자를 끌어들여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특별연설을 한 이홍구(중앙일보 고문) 전 총리는 서울이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를 통해 도약의 기회를 마련했던 사례를 설명하고 "세계 도시들이 각자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도 경쟁력에 중요한 근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콘퍼런스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사스키아 사슨(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OECD 회원국 24개 글로벌 도시들을 세계 100대 다국적 기업들과의 연계성을 기준으로 평가, 서울을 중간 수준인 12위로 분류했다.

글로벌 도시를 '다국적 기업 지휘센터, 금융 및 특화된 지식.서비스 산업의 수요 중심인 동시에 생산 중심지인 도시'로 정의한 사슨 교수는 금융.컨설팅.광고.법률.회계.보험 등 세계 100대 다국적 지식기반 기업의 본사 및 지사 소재지 등을 기준으로 24개 도시와의 연계성을 분석했다. 평가 결과 런던과 뉴욕.도쿄가 1, 2, 3위를 차지했다.

마드리드=신혜경 전문기자

런던 세계 100대기업 본사.지점 가장 많아
밀라노 디자인 최고급 인력 몰려 "파리 추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받은 도시는 경쟁력 평가에서 최상위권인 월드스타로 분류된 런던과 밀라노다. 런던의 경우 최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에서도 세계 100대 다국적 기업의 본사와 지점이 가장 많은 도시일 뿐 아니라 항공기 여객 수도 가장 많다는 점에서 뉴욕과 함께 선두 도시로 꼽혔다.

이처럼 런던이 20세기 중반의 침체를 딛고 화려하게 되살아난 것은 기본적으로 1980년대 대처 정부 이후의 경제 성장 덕분이지만, 도시 경쟁력 제고를 위한 런던시의 노력도 크게 작용했다. 86년 33개 지방자치단체로 쪼개지면서 침체에 빠졌던 런던은 2000년 다시 런던광역권으로 통합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그동안 30년 이상 꾸준히 추진해 온 런던 집중 억제와 국토균형발전정책을 포기하고 거꾸로 런던에 인구와 경제력의 집중을 허용한 것이다. 이와 함께 런던 전역에 유명 건축가를 내세워 랜드 마크 건물 신축을 허용하고, 신시가지에 해당하는 도크랜드를 개발하면서 다국적 기업 유치에 나섰다. 버려진 발전소를 개조한 테이트 뮤지엄 개관 등 문화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되찾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과거 금융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누려 온 런던은 이후 디자인 관련 문화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더해지면서 지식기반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에 더해 2012년 여름올림픽 유치에도 성공해 런던 도심 재개발에 나서는 등 세계 도시로서 전성기를 맞고 있다.

또 하나의 월드스타 도시는 밀라노다. OECD 보고서는 밀라노가 디자인뿐 아니라 창조적인 예술 분야에서 산업.교육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관련 분야의 세계 최고급 인력이 밀라노에 몰려들고 있다는 점 역시 앞으로 도시의 성장을 뒷받침할 잠재력으로 보았다.

마드리드 콘퍼런스에 참가한 레티치아 모라티 밀라노 시장은 "밀라노는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을 담당하는 기관차"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밀라노가 이탈리아에서 위상이 높다는 얘기다. 그는 "특히 디자인 분야의 성장이 뛰어나 이제는 프랑스 파리를 넘어서 단연 세계 1위"라고 주장했다. 밀라노는 지난 20년간 패션 디자인뿐 아니라 부엌가구 등 전반적인 디자인 분야에서 급성장했다. 밀라노 시민의 1인당 소득은 이탈리아 전체 국민소득의 두 배에 가깝다.

"행정도시 만들면 서울 경쟁력 떨어져"
도시학계 거목 피터 홀

"도시란 살아있는 생물체 같아서 일부 기능을 따로 떼어내 옮기면, 그 옮긴 기능이나 남아 있는 도시 전체에 결코 유익한 결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마드리드 OECD 콘퍼런스에 참가한 영국의 원로 도시학자 피터 홀(영국 런던대 교수.사진) 경은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을 이같이 평가했다. 세계 도시지리학계의 거장으로 학문적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까지 받은 홀 교수는 "서울의 기능 일부가 행정도시로 이전될 경우 도시 전체의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흔히 정보기술(IT)의 발전이 도시로의 집중을 완화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거 전화의 발명이 오히려 뉴욕과 시카고의 집중을 심화시켜 고층 빌딩 건축과 통근 교통을 위한 지하철.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의 집중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홀 교수는 "인터넷의 출현으로 정보화가 가속되고 있지만 비즈니스 여행뿐 아니라 컨벤션이나 콘퍼런스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는 점은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했다.

특히 얼굴을 맞대고 의사를 교환하는 대면(對面) 커뮤니케이션이 국제적으로 더 중요해지면서 인터넷 등을 통한 전자통신의 증가와 함께 개인의 이동도 증가하고 있는 만큼 대도시의 기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홀 교수는 이것이 바로 런던.뉴욕.마드리드.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들이 갈수록 번성하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행정도시 이전을 통한 서울의 기능 분산은 서울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서울과 행정도시 간 대면 접촉을 위한 엄청난 교통수요를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홀 교수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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