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끝>"내 도면대로 된 기계 보면 뿌듯"-기계제도 기능사 김은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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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기계제작의 첫 단계인 기계설계 작업중 설계도를 완성시키기 위해 도면을 그리는 제도업무는 기계의 복잡한 구조만큼이나 챙길 것이 많고 정확성을 요하기 때문에 섬세하고 차분한 여성의 성격에 맞는 직업입니다.』
기계설비제작업체인 한일엔지니어링 설계실에 근무하는 기계제도 기능사 김은영씨(25)는 자신의 업무성격을 이같이 말한다.
김씨가 기계설계분야에서 일하게 된 것은 올해로 6년째다.
제주도가 고향인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신학 준비를 위해 85년 서울로 울라왔다.
의상디자이너를 꿈꾸고 있었던 그는 형편이 여의치 못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사촌언니의 소개로 서울YWCA 근로여성회관에서 실시하는 기계제도기능사 교육을 받게된다. 김씨는 6개월 교육을 받은 뒤 86년11월, YWCA측 주선으로 한일·엔지니어링에 입사.
공업고등학교에서 남학생들이 3년간 받는 교육을 6개월에 속성으로 마친 김씨에게 처음 주어진 일은 연료탱크의 밸브인 노즐과 파이프 이음매인 플랜지를 그려내는 깃이었다.
노즐과 플랜지가 무엇에 사용되는지 몰라 당황한 그는 그때부터 남자동료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시간 나는 대로 기계관련 서적을 읽었다며 입사 초기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김씨가 다니는 회사는 자동운반 컨베이어 하역기계, 화학공장 압력용기, 비철금속 주조설비 등 주로 대형기계를 제작하는 곳이다.
기계가 대형이기 때문에 대개 하나의 기계설계를 놓고 3∼4명이 공동으로 제도를 하게 된다.
공동작업이므로 원활한 의사소동이 이루어져야 설계도면이 제대로 완성되게 마련인데, 김씨는 이제 이러한 의견교환 자리에서 나름의 자기주장을 덜 만큼 능숙한 제도사로 변신했다.
김씨가 자신의 직업에 만족을 갖게된 계기는 현장감을 느끼기 위해 자신이 도면을 만든 기계가 제작된 실물을 처음 보았을 때라고 회고한다.
한달 가까이 고생해 20분의 1로 축소해 그린 도면에 따라 제작된 아연 노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니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흔히 여성 제도기능사에게 약한 현장감을 키우기 위해 자신이 그린 도면에 따라 만들어진 기계설비가 완성되면 반드시 실물을 확인하는 습관을 갖도록 노력했다고 말한다.
세밀하게 도면을 그리는 업무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푼다는 김씨는 요즈음 『기계설계 개선법』이라는 책으로 기계설계를 열심히 익히고 있다.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제도업무는 기계에 작용하는 물리적 힘을 미리 계산해 제시된 자료에 따라 도면을 그리는 설계와는 동떨어진 제도업무다.
그는 기계에 작용하는 물리적 힘을 계산해내는 계산능력을 키워 독자적으로 설계를 할수 있는 기계설계사가 되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
김씨는 『기계제도 기능사가 과거에는 남성들의 전문영역이었으나, 84년부터 서울YWCA 근로여성회관에 교육과정이 개설되면서 여성들의 진출이 늘고 있다』며 자신이 다니는 한일엔지니어링에만도 여성 기계제도기능사가 3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씨는 제주도 섬 처녀가 기계설계사가 되는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기계제도에 몰두하고 있다. <고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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