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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시대 힘찬 첫발”/합의서·비핵화선언 발효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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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양측 뜨거운 박수속 문본교환/“시베리아 기압 낮아져 평양푸근”연총리/로동신문선 이례적으로 도착성명 실어/체조 매스게임 참관여부 싸고 신경전도
▷발효행사◁
19일 오전 평양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남북합의서등 3개문건에 대한 발효행사는 생중계됐다.
남북간 행사를 실황중계하기는 90년 통일축구경기에 이어 두번째인데,당시에는 5분정도의 시차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기술개발」로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번 생중계는 평양→판문점→서울간에 설치된 지하케이블을 통해 이루어졌는데,양측의 TV주사선방식이 달라(남측은 NTSC,북측은 PAL식) 판문점에서 변환과정을 거쳤다.
오전 10시33분부터 17분동안 진행된 생중계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대한 확인문본(통보문)을 양측 총리가 각각 낭독한후 교환했는데,교환때마다 양측 대표단과 관계자들은 박수.
이어 「남북고위급회담 분과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는 우리측 임동원 대표와 북측 최우진 대표가 그 내용을 낭독한뒤 양측총리의 서명,교환으로 발효절차를 마쳤다.
○…양측 총리는 인사발언에서 합의서발효의 역사적 의미를 찬양했는데 연총리연설에 비해 정총리발언은 상당부분 이산가족교류·경제협력·북한핵사찰등 향후문제를 강조.
정총리는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야만 한다』며 『한반도의 핵문제는 지금 국제사회와 온겨레의 초미의 관심사일뿐 아니라 합의서의 실천의지와도 직결되므로 그 해결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역설.
정총리는 합의서 의의에 대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화해와 협력시대를 향한 첫발을 힘차게 내디뎠다』고 선언.
정총리는 『우리 겨레와 우리자손들이 자유와 인권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보금자리를 마련해야한다』며 북한인권문제를 우회적으로 언급.
정총리에 앞서 인사발언을 한 연총리는 『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평화적 전제를 마련하는데서 나서는 기본문제를 포괄적으로 담고있는 민족공동의 통일촉진강령』이라고 찬양.
연총리는 『우리의 탈선된 민족사가 자기궤도에 들어서고 있다』『합의문서들은 단순한 타협이나 절충의 산물이 아니며 더욱이 서로 승벽내기를 하여 얻어진 결과는 더욱 아니다』『북의 승리도,남의 승리도 뛰어넘은 숭고한 민족적 이념이 있다』고 강조.
한편 북측은 당초 남측에 전달하는 발효통지문속에서 「경애하는 김일성 주석께서」라는 표현을 사용하려했으나 연락관접촉에서 남측요구를 받아들여 「경애하는」부분을 삭제했다는 후문.
회의는 오전 11시12분에 끝났으며 남북한은 오후에 2명씩 참석하는 대표접촉을 갖고 핵통제공동위구성·운영방안·분과위구성통보문제와 3개분과위 첫회의 및 7차회담의 날짜를 협의했다.
▷기자회견◁
오전 11시20분 이동복 남측대변인은 합의서 발효행사가 끝난뒤 기자회견을 갖고 역사적 문본교환의 의의를 간략히 설명한뒤 북측기자들의 잇따른 질문에 답변.
대부분의 북측기자들은 『남측이 합의서 발효에 앞서 국회 비준절차를 거치지 않았는데 어떤 사정 때문이냐』며 남측의 합의서 발효절차문제를 집중추궁.
이에 이대변인은 『국가대 국가간 조약이나 협정의 경우는 국회의 비준을 거쳐야하나 남북관계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국회비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이점은 오늘 합의서 발효로 북측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설명.
▷첫날회의◁
남북대표단은 오전 9시45분쯤 잇따라 회의장인 인민문화궁전에 도착,중앙회의실에 들어와 악수를 나누고 10여분동안 날씨·행사일정·공해문제 등에 대해 환담.
○…남북대표단은 환담도중 핵문제를 둘러싼 양쪽의 이견때문인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다.
먼저 북쪽은 이날 오후에 평양체육관에서 어린이들이 벌이는 체조매스게임에 남측대표단을 초청한다고 기선을 제압하고 나왔다.
이에 대해 정총리는 『우리 대표단형편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우회적으로 거부하는 입장을 표명. 분위기가 미묘해지자 연총리옆에 앉아있던 북측 차석대표인 안병수 조평통부위원장이 『우리 교육 위원장이 특별히 초청하는 것』이라면서 『예술체조이고 준비하는 아이들이 기다릴 터이니까 꼭 가달라』라고 다시 요청.
정총리는 『우리 대표들이 딴일이 있을 것 같다』라며 수락을 회피.
이같은 양측의 신경전에 따라 양측대표들은 공식회의가 끝난뒤 일정문제를 다시 협의하기로 하는선에서 절충.
○…이날 환담에선 특히 연총리가 요즘의 평양날씨를 최근의 국제정세와 상징적으로 대비시킨 듯한 표현을 써 눈길.
연총리는 『요즘 평양날씨가 따뜻한 것을 보고 기상전문가들이 시베리아의 고기압 압력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들 한다』면서 『고기압은 낮아지고 우리민족의 통일열기는 높아지니까 이렇게 날씨가 따뜻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양은 올 겨울에는 그다지 춥지않았다』고 북측대표들은 입을 모았다.
▷북측반응◁
이번 6차회담에서 북측의 남측에 대한 「접대」는 지난해 10월 4차회담때와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으나 로동신문에 우리측 이동복 대변인의 평양도착 성명을 간단히 게재하는 등 약간 변화된 모습.
로동신문 19일자는 1면 우측하단에 남측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했음을 알리면서 『남측대변인이 도착성명을 통해 「6차회담이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민족사에 또하나의 빛나는 이정표가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북측대표단과 공동으로 성실하게 노력하겠다는 일념을 갖고 평양에 왔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는데 우리측 대변인의 성명내용이 한줄이나마 로동신문에 실린것은 다소 이례적.
○…4차때 평양 밤거리는 아파트의 불이 모두 꺼져 어두웠으나 18일밤 10시쯤 시내 간선도로의 아파트는 불이 대부분 켜져있어 눈길. 거리에 김정일 비서의 생일 축하와 주체혁명을 강조하는 내용의 네온사인이 많이 눈에띈것도 4차때와 다른 점.
이것은 북한의 전력사정이 어렵다는 우리측의 보도를 의식한게 아니냐는 해석들.
▷만찬◁
북측 연총리가 목란관에서 주최한 만찬에는 남측대표단 일행 90명과 북측인사 1백60명등 모두 2백50명이 참석.
연총리는 8분간의 만찬사에서 『우리민족이 정한 1995년을 통일원년으로 만드리라고 확신한다』며 합의서와 비핵공동선언의 성실한 이행을 강조.
정총리는 답사에서 『우리 속담에 「우수·경칩에 대동강도 풀린다」는 말이 있다』고 하면서 『내일 우수와 함께,그리고 합의서발효와 더불어 이 땅에 진정한 화해의 봄이 왔다는 소식을 온 겨레에 전하도록 노력하자』며 건배를 제의.
정총리가 만찬답사를 마치고 테이블로 돌아오자 연총리는 『잘들었습니다. 잔을 죽 비우세요』라며 정총리에게 첫 건배의 잔을 다 비울 것을 권유.<평양=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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