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물쩍 넘어가면 은폐시비/검찰수사 과제와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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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전문가 지능범죄 입증에 한계/허위감정 밝혀져야 재심가능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인들이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을 했다는 사설감정인들의 폭로로 시작된 검찰수사는 착수 8일만인 17일 국과수 김형영 실장이 문서감정을 둘러싸고 1천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구속됨에 따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검찰은 사건이 폭로되자 무엇보다 먼저 국과수 김실장의 수뢰여부를 먼저 밝혀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속칭 「먼지털이」식 수사방법인 구좌추적을 실시한 끝에 김실장이 감정을 전후해 사건관계자들로부터 돈을 받아온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러나 김씨가 사건당사자들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해서 그 대가로 허위감정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검찰의 고민이다.
검찰수사결과 김씨가 돈을 받은 대가로 허위감정을 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국과수의 감정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회복하기 힘든데다 자칫 검찰수사력에 대한 공신력문제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국과수 수뢰사건은 이미 민·형사사건에서 문서감정의 결과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재심청구 또는 법원판결에 대한 불신등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다. 특히 김기설 유서대필사건의 필적감정을 둘러싸고 다시한번 재야단체등의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검찰은 향후 뇌물이 국과수측의 허위감정과 연결되는지를 밝혀내야 하고 이밖에 이세용씨의 서류위조 혐의등도 재수사해야 한다.
이에 따라 검찰은 김실장에게 뇌물을 준 사람들과 관련,법원이나 검찰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던 문서들이 당사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감정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감정서류들의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같은 검찰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국과수 김실장의 허위감정을 밝혀낼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 보인다.
문서감정 자체가 전적으로 과학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경험에 비추어 동일 또는 상이함을 판단하는 극히 주관적인 일이므로 비록 객관적으로 김실장이 의뢰인들을 위해 유리한 감정을 했다고 볼수 있는 특정 감정결과를 찾아내더라도 이를 근거로 김실장이 허위감정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같은 수사상의 어려움 때문에 만약 김실장의 허위감정을 직접 입증하지 못할 경우 검찰이 의도적으로 국과수의 허위감정을 덮는다는 오해를 없애기위해 관련서류들을 언론에 공개,국민들의 판단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거액의 뇌물을 김실장에게 준 이세용씨가 현금보관 확인서등을 전문적으로 위조했다는 진정이 곳곳에 접수되어 있어 이를 밝히는 것이 허위감정여부와 직결될 수 있으며 이번 사건의 폭로를 주도한 조병길씨(46)의 서울신학대 시험지도난사건 관련등 석연치 않은 행적도 수사해야할 검찰의 과제다.
◇수사결과=비록 이번 수사에서 국과수의 허위감정사실은 입증되지 않는다 해도 이번 뇌물파동으로 비롯된 국민들의 국과수불신은 크게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즉 국민들은 감정자체의 특수성 때문에 허위감정을 밝힐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기 보다는 검찰이 파문을 축소하기 위해 일부러 허위감정사실을 은폐하거나 아니면 검찰의 수사력 부족으로 허위감정을 밝히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번 수사에서 국과수의 비리만 드러났을뿐 민사소송과 관련,법원이 감정을 의뢰해오고 있는 사설감정인들의 감정결과에 대해서도 불신이 높아지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유죄판결의 주된 이유가 됐던 형사사건 관련자들과 사설감정인들의 편파적 감정때문에 민사소송에서 패소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국과수는 민사소송 관련감정을 해주지 않았음) 재심청구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형사사건 관련자들의 재심은 최소한 구속된 김실장이 수뢰죄가 아닌 형법상의 허위공문서작성죄(227조)로 유죄판결을 받은후에야 가능하고 김실장이 감정한 사건에 국한되므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실정.
또 민사사건도 해당사건에서 법원의 요청으로 감정을 한 사설감정인이 허위감정죄(154조)로 유죄를 선고받지 않는한 이들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다만 검찰은 이같은 법적 절차를 떠나 당사자들의 불신감을 해소하기 위해 최소한 김실장의 감정결과가 증거로 채택돼 유죄판결이 내려진 사건은 다른 감정기관에 재감정을 의뢰,그 결과를 사건처리에 반영시키도록 하는 성의는 보여야 할 것이다.<이상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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