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탑·빙벽 솟은 대빙하 … SF 촬영지 온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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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한국 로체샤르·로체 남벽 원정대가 본격적인 등반에 나섰다. 엄홍길 대장을 포함한 11명의 대원이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거친 빙하 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로체=김춘식 기자

'캠프1(해발 5900m)'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베이스캠프(5220m)에서 준비를 끝내고 첫 등반에 나선 4일, 하루 만에 700m 가까이 올라 캠프1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난관이 시작됐다. "이 정도라면 캠프2(6500m) 설치도 5일까지는 가능하겠다"고 했지만 이틀 동안 헛수고만 했다. 올라가는 도중 날이 어두워져 캠프1로 철수하기를 이틀째 반복했다.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기념해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2007 한국 로체샤르.로체 남벽 원정대(협찬 신한은행.㈜트렉스타)가 정상을 향한 본격 등정을 시작했다.

4일 오전 7시(현지시간) 엄홍길(47.트렉스타) 대장을 포함한 11명의 대원이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1시간30분 뒤 대원들은 거대한 빙벽이 시작되는 빙하 지대 입구에 섰다. 이곳은 마치 공상과학(SF) 영화 촬영지를 연상케 했다.

로체 빙벽에서 흘러내린 눈과 얼음이 '얼음 삼각주'를 이루고, 그 안에는 무수한 빙탑이 솟아 있다. 겨울철 일본 동북부 지방 스키장에 생기는 스노 몬스터나 남태평양의 산호초 군락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체 동쪽 아일랜드피크 너머에서 솟아오른 태양이 빙탑을 붉게 물들였다.

빙하 지대를 200m쯤 올라갔을 때 첫 번째 크레바스를 만났다.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이다. 빙하가 흘러내려 암벽과 얼음 사이에 3m 정도 틈이 생긴 것이다. 대원들은 모두 안전벨트를 포함한 등반 장비를 착용해야 했다.

가장 먼저 셰르파가 암벽을 기어올라 크레바스를 건넜고, 고정 로프를 설치했다. 엄 대장과 홍성택(40) 등반대장 순으로 건넜고, 기자는 해발 5300m 지점인 이곳까지만 동행했다. 등반 장비가 없어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었다.

원정대는 이날 3명의 1차 등반팀을 꾸려 캠프1을 구축한다는 계획이었다. 홍 등반대장을 리더로 신동민(33).배영록(33) 대원이 1차 등반팀으로 선발됐다. 엄 대장을 포함한 나머지 대원은 캠프1에서 100여m 아래에 있는 전진캠프에 등반을 위한 짐을 저장했다. 에베레스트(8848m)나 K2(8611m) 등 베이스캠프에서 제1캠프까지 거리가 먼 경우에는 전진캠프를 따로 설치한다.

세 명의 대원만 남겨놓고 모두 베이스캠프로 내려온 시간은 오후 4시. 사실 하루 만에 베이스캠프에서 빙하 지대를 통과해 5900m의 암벽에 캠프1을 설치하는 것은 무리한 페이스다. 베이스캠프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오후 7시, 등반팀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홍 등반대장은 "캠프1 장소가 예상외로 협소해 텐트를 1개밖에 못 쳤다"며 "한 텐트에서 3명이 쪼그리고 앉아 하룻밤을 보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을 보내왔다. 1차 등반팀과 함께 오른 3명의 셰르파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로체 남벽은 3km가 넘는 직벽과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석 때문에 산악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4일 등반에 나선 대원들이 가파른 경사면에 캠프1을 설치하고 있다.

캠프1 지점은 일명 '비너스의 허리'로 불리는 곳이다. 급경사인 암벽 가운데에 비너스의 허리처럼 잘록하게 들어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거의 수직으로 된 남벽이 그나마 텐트를 칠 수 있는 장소다. 로체샤르 남벽에 네 번째 도전한 엄 대장은 "반드시 성공해 16좌(14좌+알룽캉.로체샤르) 완등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로체=김춘식.김영주 기자 <kimcs962@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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