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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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떤 물건을 놓고 감정하는 행위는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서화나 골동품 따위에 대한 감정. 누가 언제 어디서 제작했으며 진짜인가 가짜인가 등을 식별,판단하는 일이다. 감정방법에는 「경험에 의한 육안감정」「문헌에 의한 고증감정」「심증적 비교감정」「광학기계 같은 것에 의한 과학감정」등 네가지가 있는데 어느 한가지 방법에 집중하는게 아니라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혼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술품에 대한 감정이 일반화하기 시작한 것은 미술품 수집이 붐을 이루면서 진위시비가 잇따랐기 때문이었다. 현재 화랑협회와 고미술협회 산하에 감정기구가 설치돼 있으나 그 감정결과가 법적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동산·부동산등 재산권을 평가하는 감정. 법관이 동산·부동산에 대해 특별한 학식·경험을 갖춘 사람에게 의뢰해 그 재산의 경제적 가치를 판정케 하는 일이다. 공정거래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 73년 법률 2663호로 제정된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은 감정결과를 가액으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으며,공인감정사의 자격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셋째는 법원이나 검찰 등의 명령에 따라 특별한 전문가가 자기의 학술·지능·경험에 의해 구체적 사실에 응용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감정. 이 감정은 민·형사사건에 있어 유·무죄판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맡고 있다. 법의학과가 맡고 있는 정신감정도 중요한 감정가운데 하나지만 보통 감정이라고 하면 물리분석과 산하 문서분석실이 담당하고 있는 필적·인영감정을 꼽는다.
최근에는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가 자필이냐 아니냐를 감정하는 일로 온 국민의 시선을 집중케 했다.
이상 세가지의 감정행위는 모두가 금전문제나 인권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두뇌가 아무리 발달하고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1백% 진실은 가려낼 수 없다는데 있다.
그림이 진짜냐 가짜냐,감정가액이 적정하냐 아니냐,필적이 동일인이냐 아니냐… 를 따지는 일은 얼핏 단순해 보이는데도 법원조차 감정결과를 1백% 신빙하지는 않는다는게 참 이상하다.
더 큰 문제는 감정관련자들끼리 결탁해 사실이 아닌 감정결과를 보고하는 경우다.
경위야 더 두고봐야 알겠지만 공인된 기관이나 그 기관에 속한 사람이 매수됐다면 이 세상,누굴 믿고 살겠는가.<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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