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탄'이 아닌 '민생'국회가 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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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파행을 거듭해온 정기국회가 어제 폐회했다. 오늘부터 다시 임시국회가 열리지만 국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일을 하기 위한 것인지, 정치 비자금 수사로부터 동료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용인지 알 수 없게 한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을 넘기고도 아직 계수조정위원장 자리 다툼으로 심의조차 못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번 임시국회는 16대 국회로선 사실상 마지막 회기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예를 보더라도 내년으로 넘어가면 4월 총선을 앞두고 더 이상 정상적인 국회 운영이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시급을 요하는 수많은 안건이 자동 폐기되고, 5개월여를 기다려 17대 국회가 개원하면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다행히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은 박관용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화급을 요하는 안건이 어디 그뿐인가. 보험료를 올리고 노후 연금액을 줄이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연금개혁은 5년 뒤인 2008년으로 미뤄져 엄청난 재정압박과 수급자의 저항을 동시에 야기하게 된다. 호주제 폐지를 담은 민법 개정안도 본회의 상정조차 못하고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라크 파병 동의안이나 정치개혁 관련 법안은 처리된다 하더라도 농어민 피해보상 및 농어촌지원대책 관련법 등 꼭 처리돼야 할 법률안이 최소한 수십건이 넘는다.

지난 정기국회가 측근비리 특검법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 때문에 표류했다지만 그것이 정리된 이후에도 안건 처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총선을 코 앞에 둔 의원들의 관심이 나라의 장래보다 특정 이익집단의 표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책임있는 심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농촌표를 의식한 농림해양수산위가 의장이 직권상정 하라며 FTA 심의를 포기해 버린 것이 그런 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특정 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5개월 이상 법적 미비로 국정에 지대한 혼선을 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런 법안은 반드시 이번 회기 내에 마무리해 국가와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