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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이념 극복한 휴먼드라마|MBC-TV『여명의 눈동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MBC-TV의 36부작 대하드라마『여명의 눈동자』(송지나 극본·김종학 연출)가 한국 TV드라마사에 굵고 뚜렷한 획을 그어놓고 마침내 6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해 10월7일 막을 올린 이 드라마는 그 동안 줄잡아 시청률 50%를 웃돌 만큼 인기리에 사람들의 눈길을 붙들어 왔다.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향도 전에 없이 컸다. 그 반향은 주로 「TV드라마에 신기원 이룩」「TV드라마의 개념을 바꿔놓았다」는 등의 표현으로 최상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 쪽이었다. 기억하기론 신문이나 잡지 등 인쇄매체에서 한 드라마를 놓고 중점적으로 천착, 품평을 가한 것도 이 드라마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대부분 로케이션 제작의 웅대한 스케일에다 사실적인 영상으로 시종 시청자들을 압도, 작품에의 흡인력을 높였다. 이는 TV 드라마를TV영화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결정적인 힘이 됐다.
중국·필리핀·사이판 등 국외로 무대를 광역화하고, 대규모 오픈 세트와 유사현장을 이용한 야외 제작이 이 드라마에 웅대함과 사실감을 우러나게 하였다.
특히 외국의 전쟁영화를 방불케 하는 잇따른 전투장면의 여실한 재현은 낙후한 분야인 특수효과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이 드라마에 사실감을 더했다. 시대상황을 드러내는 흑백 자료화면과 색채, 극중화면의 자연스런 접합도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역사현장에 자리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에 퍽 효과적인 새로운 다큐드라마 기법이었다.
사실 반공이 국시로 행세하던 70년대에 씌어진 김성종의 원작소실은 오늘의 시점에선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극우적인 색채가 짙은 냉전적 시각을 가졌다.
그래서 이 소실을 원작에 충실하게 극화할 경우 드라마는 필연적으로 시대 낙후적인 반공드라마로 전락할 위험이 높았다. 그만큼이 드라마는 만들기 까다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내용면에서 원작이 지닌 좌우이념의 벽을 극복, 작품을 휴먼드라마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이 드라마는 이념이나 역사는 얘기하지 않고 인간위주로 주인공들의 개인적인 삶의 묘사가 전체 드라마를 지배하는 내용이었다. 드라마가 4회에 걸쳐 그 동안 금기의 소재영역이었던 제주도 4·3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규정한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제주도민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들고 일어난 민중항쟁이란 점에 초점을 맞춘 것도 그런 탈이념적 내용과 맥락을 같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원작소설이 지닌 반공적 색채를 지우고 오늘의 시대상황에 맞게 인간중심의 드라마로 재창조한 각색과 그에 따른 연출은 평가할만했다.
물론 시각에 따라선 남녀 세 주인공이 이념보다 생존 욕구와 사랑의 끈에 이끌려 사고하고 행동하는 등의 드라마 내용을 두고 역사인식의 부족이 빚은 허무주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를 해석하지 않고 인간을 매개로 역사를 따라가는 드라마의 지향성을 고려해볼 때 이는 우리가 용인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드라마의 웅대한 스케일, 사실적인 영상, 탈이념적인 내용만이 시청자들을 끄는 흡인력의 요인은 아니다. 대중적 재미와 품격이 조화된 스토리텔링, 무슨 외국 첩보물에나 있을 법한 긴박한 상황전개와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멜러적인 슬픈 사랑얘기와 살아남기 위한 비정한 사투와의 절묘한 교직, 빈틈없이 짜여진 절제되고 세련된 영상 구성, 역동적이면서도 유연한 영화적 연출기법과 카메라워크, 드라마에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킨 장중하고 감미로운 주제 및 배경음악의 창작 처리, 철저를 기한 소품 등 인기의 요인은 보다 복합적이다.
물론 이 드라마에도 부분적으로 미흡한 구석이 없진 않았던 것으로 지적됐다. 예컨대 도입부의 잔혹을 극한 일본군의 생체실험과 대치와 여옥의 농염한 키스장면, 일본군 복식과 깃발 등 고증의 부실, 끊임없이 이어진 주제음악의 표절시비 등. 그러나 이는 대하의 흐름에 띄워진 한 점 티끌처럼 작품 전체의 만듦새엔 큰 흠이 될 수 없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전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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