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열풍 "성령으로 샤워하고 출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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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일 오전 서울 서빙고동 온누리교회에서 3000여 명이 모여 새벽기도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아요. 새벽기도가 더 많은 에너지를 주죠.”변선구 기자

3일 오전 4시, 캄캄했다. 그럼에도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앞은 '한낮'이었다. 여기저기서 차량이 몰려들었다. 지하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통로에 갓길주차를 할 정도였다. 성경을 든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교회로 들었다. '이게 새벽 4시 풍경이 맞나?' 싶었다.

본당으로 올라갔다. 안은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1층은 물론, 2층까지 가득했다. 아니나다를까, 잠시 후 본당 입구에 안내 표지가 섰다. '본당은 자리가 없습니다. 부속실로 가십시오.'

오전 5시, 새벽기도가 시작됐다. "주와 같이 길가는 것/즐거운 일 아닌가…." 찬송가가 울려퍼졌다. 안이 쩌렁쩌렁했다. 이날 모인 이들만 3000명이 넘었다. 양재.부천.수원 등 7개 캠퍼스까지 합치면 7000명이 넘는 온누리교회 신도들이 새벽기도를 하고 있었다. 2일부터 시작한 '2007 고난주간 특별부흥새벽집회'다. 부활절(8일)을 거쳐 15일까지 2주간 계속된다. 새벽기도 열풍은 연초부터 몰아쳤다. 1월1일부터 2월15일까지 40일간 계속됐던 온누리 교회 새벽기도에는 매일 1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

온누리교회뿐만 아니다.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2~7일)에 사랑의교회는 1만 여명, 소망교회는 3000여 명, 순복음교회는 5만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또 명성교회가 3월초에 8일간 개최한 특별새벽집회에는 5만5000명이 모이기도 했다.

이유가 뭘까. 이날 강단에 오른 하용조(61)담임목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새벽기도를 이끌만큼 건강이 썩 좋진 않다. 신장이 안 좋아 투석 중이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큰 은혜가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뭘 줘서, 뭘 고쳐줘서 고마운 게 아니죠. 그분이 계신 것만으로 좋은 겁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기도를 찾은 이들도 그랬다. 그들 역시 가슴에 '예수'를 담고서 하루를 열고픈 이들이었다. "평소 아침잠이 많아요. 세수도 안 하고 새벽기도에 간 적도 있죠. 그래도 새벽기도는 바쁜 일상과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한 제 마음을 청소해줘요. 출근길도 가뿐해요.(박나림.33.MBC 아나운서)" "일에 쫓기다 보면 따로 기도를 하긴 어렵죠. 새벽만큼 집중도가 높고, 하나님 음성을 듣기에 좋은 시간이 없습니다.(김연상.53.사업가)"

사랑의교회 이충희 목사는 "특히 새벽기도를 통해 영적인 체험을 하는 성도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참석자도 많다. 지방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 새벽기도를 위해 1주일씩 한국으로 들어오는 교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회 이종윤 담임목사는 "예전에는 출근 부담 때문에 남자보다 주로 여자들이 새벽기도에 참석했다. 그런데 요즘은 새벽기도 후에 출근하는 남자들이 부쩍 늘었다. 서울교회의 경우 새벽기도의 남녀 비율이 거의 반반"이라고 말했다.

손신국 온누리교회 목회지원실 담당목사는 "올 초 40일 새벽기도에 개근한 성도들이 8000여명"이라며 "다들 마라톤을 완주한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완주'를 위해 회사에 사정해 출장을 미룬 이도 있었고, 지방에 갔다가 허겁지겁 비행기로 날아온 이도 있었다. 교회에선 '온누리 40일 특별새벽집회 기념'이라고 찍힌 한정판 성경을 '완주자'에게 나눠줬다.

에피소드도 많다. 예배는 새벽 5시에 시작한다. 그러나 소위 '명당 자리'를 잡기 위해 새벽 2시에 오는 이들도 있었다. 담임목사 설교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본당은 새벽 4시만 돼도 자리가 찼다. 그래서 '4당5락'이란 말까지 생겼다. '4시 이전에 오면 본당, 5시에는 부속실'이란 의미다. 본당에서 떨어진 부속실에선 영상을 통해 설교를 봐야 한다. 그래서 본당에 드는 걸 아예 '입성(入城)'이라고 부른다.

카풀 이용자도 꽤 있다. 김선애(33.여.동작구 본동) 씨는 "카풀 약속을 하니까 새벽기도를 빠질 수가 없어요. 주차장 혼잡도 줄이고 그야말로 '일석이조'"라고 했다.

택시 기사들에게도 '새벽기도 특수'는 화제다. 손님이 없는 새벽 3~4시에도 교회 앞은 붐비기 때문이다. 새벽 기도가 끝나는 오전 6시30분이면 교회 앞에 택시들이 줄을 선다. 순식간에 생겨난 '임시 승강장'이다. 인근 지하철역까지 서너 번씩 왔다갔다하는 '반짝 특수'가 짭짤하다.

새벽기도 열풍은 바다도 건넜다. 미국 뉴욕에 사는 이도영(여)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인터넷방송CGNTV의 VOD서비스를 이용해 새벽기도를 한다"며 "40일 새벽기도를 통해 영적 경험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외에서 새벽기도에 참여하는 이들만 1만명이 넘는다고 손 목사는 말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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