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김일성 생일 거래」 불발/주로 소비재… 조건 안맞아 거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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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 교포상사 통해 비누 치약 시계등 요청/「북한특수」 시기상조 입증
이제는 김일성 북한 주석의 생일축하행사가 우리의 일선 고역 창구에도 일일이 공식으로 감지되는 시절이 됐다. 북한은 지난 1년간 이른바 「4·15물자 조달계획」이라 해서 오는 4월15일 김주석의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주민들에게 나눠줄 선물들을 사들여 왔는데,이중 수백만∼수천만달러의 주민이 국내 종합상사들에까지 접수됐다. 그러나 북한으로부터의 주문내용은 「남한상표를 뗀다」거나 「현금결제가 아닌 물물교역」이라는 식이고,제시된 가격이 터무니 없이 낮아 국내 기업들이 이에 응하지 않고 있어 「북한특수」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시기상조다.
또한 북한의 이번 주문은 현재의 여건에서 남북한간의 교역이 얼마나 성사되기 어려운 것이며 앞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본보기다.
우리측이 지난해 일찍이 입수했던 북한측의 「선물 목록」만해도 웬만한 책 한권 분량.
이 목록에 올라있는 품목,또 실제로 국내종합상사들이 주문받은 품목들은 비누·치약·수건·시계·자전거·가전제품 등으로 김일성의 생일에 맞춘 「4·15 물자조달계획」이 단순한 생일선물 구매라기보다는 북한주민전체의 생활필수품 조달성격임을 엿볼수 있게 한다.
북한은 지지난해에도 4·15 물자조달계획을 추진,생필품 수입시기를 김주석의 생일에 맞추었었다고 한 업계관계자는 전하고 있다.
올해 4·15 조달물자의 주문을 국내상사에 주로 전했던 창구는 재미교포 윤세중씨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 서초동소재의 세진상사(지난해 10월 「시월」로 상호 변경)라는 조그만한 무역회사.
세진상사는 그간 홍콩 한 중개상의 한국대리점 역할을 했었고,현재도 북한과의 창구는 열고 있으나 올들어 북한과의 교역중개실적은 없고 요즘은 주로 대중국 교역중개에 주력하고 있다고 「시월」의 한 직원은 전했다.
그간 국내 주요 상사들이 접했던 북한의 4·15 물자주문 현황은 다음과 같다.
▲삼성물산=작년 11월 세진상사를 통해 가전제품과 섬유제품 몇백만달러어치를 북한에 수출해 달라고 요청받았으나 채산성이 없어 단한가지 품목도 주문에 응하지 않았다.
국내 기업들이 자전거를 북한에 보낼 계획이라는 일부 소문과 관련,삼성물산의 한 관계자는 『자전거도 채산성이 전혀 맞지않아 국내 기업들이 선적하지 않았고 북한측은 대신 중국에서 값싼 자전거를 사들였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럭키금성성사=그동안 TV·설탕등 일부 완제품을 제3국을 통해 북한에 반출했으나 『어디에 쓰는지는 북측에서 알아서하는 것인만큼 김일성 생일선물인지의 여부는 모른다』고 한 관계자가 밝혔다.
럭금측은 특히 지난번 북한에서 반입했던 무연탄 10만t(4백만달러어치)에 대한 구상무역의 하나로 TV·설탕을 3∼4월에 북측에 반출하기로 계획이 잡혀 있다고 밝히고 『시기가 김일성 생일과 겹쳐있어 주민들에게 선물로 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선경=지난해 4,5월 세진상사를 통해 생필품·의류·전자제품 등을 주문받았지만 제시한 가격이 너무 낮아 이를 거절했다.<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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