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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정착을 위한 현장점검(2)|「옥석」구분 없이 무비판적 시청|소비실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비디오는 극장의 영화처럼 공공의 장소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공간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따라 달라지는 영상과 음향의 매체를 향유하는 것이다. 이는 감상 자 개인이 비디오를 마음대로 조작하기 때문에 영화나 텔레비전과는 또 다른-그 유래나 기원이 되는 이들과는 다른-특수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에 따라 비디오는 개인적인 즐거움만을 위한 소비성향을 부추긴다.
개인사업을 하는 변 모씨(30·서울 독산동)는 주말이나 휴일에는 보통 집 근처 단골 비디오 점에서 5, 6편의 극영화비디오를 빌린다. 이 비디오들을 다 보려면 하루종일 걸리지만 실망스런 내용의 경우는 속도를 빨리 해(Fast Forword)지나쳐 버린다. 밤새도록 그의 감각에 수많은 영화장면이 스쳐 지나가게 된다. 그는『비디오가 포장이나 광고에서 그럴듯한 작품인 것 같아 보게 되면 전혀 시간만 아까운 경우가 많다』면서도『간혹 흑 진주처럼 숨어 있는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는 황홀함 때문에 일단 여러 가지를 빌린다』고 한다.
서울 묵 동에서 3천여 점을 갖춘 비디오 대여 점을 하는 김정숙씨(37·여)는 명작들을 비치한다 하더라도 이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비디오 광들(Heavy User)을 제외하곤 보통 아주 잘 알려진 프로만을 찾는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각각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스트레스 풀 것, 화가 나는데 봐야 할 것, 갑자기 시간이 남아 때울 만 한 것, 무조건 때려부수는 것, 뭔가 신나는 것』등 막연한 취향만을 드러내는 고객들에게 좋은 프로들을 권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나 TV는 상영되는 순간에 모두 인식해야 하는 보다 성실한 시청자세를 요구하지만 언제든지 정지시켰다가 다시 볼 수 있는 비디오는 또 다른 감상자세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특성은 사용하기에 따라 TV의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특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무비판적인 시청 습관에 의해 비디오는 TV보다 더한「바보상자」가 되기도 하고 좋은 프로를 찾아보려는 노력에 따라 비디오에서 얻는 이해는 크게 차이나는 것이다.
회사원 임 모씨는 보통 퇴근길에 일주일에 서너 번 청계천7가 벼룩시장에 들른다. 이곳에선 어떤 비디오 프로든 고를 수 있으며 시세가 없는 프로는 한 개에 2천5백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강남의 대여 점과 같은 가격이고 설사 볼만한 프로가 못되더라도 공 테이프보다 싼 가격이니 손해볼 것이 없다.
일단 만들어졌다가 시세가 없어 반품된 비디오들이 덤핑으로 팔리는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비디오들 중에서 꽤 좋은 작품이나 포장과 제목이 나빠 사장된 프로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 곧 횡재한 것에 다름없다. 한번 본 후 5백원을 더 주고 다른 것과 바꿔 볼 수 있으며 집 근처 비디오 점에 희사하면서 또 새로운 프로를 빌려 볼 수 있다.
온갖 헌책들이 다 모였던 청계천 벼룩시장엔 이미 비디오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이곳에서 10여 년 전까지 쌈지 돈으로 무협지를 수십 권 빌려 가던 사람들이 요즘엔 비디오를 1만원에 4개씩 한 보따리 싸 들고 집에 들어가는 군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모양이다.
비디오 프로에 대한 성실한 안내, 다양한 프로그램의 비치 등을 주무기로 하는 블록버스터 등 외국의 비디오 유통업체가 들어오면 주택가의 영세한 비디오 점은 도태될 형국이다.
최근 이에 대한 대책으로 도·소매상들이 연합한 비디오체인점을 만들어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점차 다양해지고 광범위해지는 소비 욕구에 부응하려는 움직임도 있다.<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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