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러스FTA] '고무줄' 시한 진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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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3월 31일 오전 7시→4월 2일 오전 1시→오전 6시→오후 1시'. 끝없이 늘어난 협상 시한은 기다리는 모두를 지치게 했다.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만 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시한.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위임한 무역촉진권한(TPA) 만료 시점에 맞춰 단순 계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됐던 시한이 계속 연장된 것을 두고 갖가지 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전에 양측의 교감이 있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지만 미국 측이 시한 문제를 교묘하게 이용해 비장의 '협상 카드'로 썼다는 관측도 있다.

◆ 거듭된 시한 연장=외교통상부는 지난달 초 공식적으로 언론에 돌린 참고 자료를 통해 시한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미 FTA가 TPA 규정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본 서명 시점(미국시간 6월 29일) 90일 전까지 미 의회에 협상 내용이 보고돼야 한다. 이 경우 시한은 미국 기준 4월 1일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날이 일요일임을 감안하면 시한은 금요일인 3월 30일 근무 종료 시간인 오후 6시(한국시간 31일 오전 7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측 협상단은 최종 협상에 돌입하면서 협상 후 결과 보고 등의 절차를 고려해 타결 시점을 한국시간 31일 0시로 잡았다. 그러나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이날 오후 연장 소문이 돌았고, 결국 해를 넘긴 31일 오전 7시30분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는 "협상을 48시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김 대표는 "새로 합의된 협상 시한은 한국시간 월요일(2일) 오전 1시"라며 "이후 한국시간 월요일 오전 6시(미국시간 4월 1일 오후 5시)까지 미국 측이 본국 의회에 협상 결과를 통보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양국 협상단은 1일 밤~2일 새벽을 지나며 아무런 설명 없이 이 시한을 넘겼다. 2일 밤 12시57분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시한을 3분가량 남기고 기자실에 내려와 "한.미 양측이 오전 1시까지 협상을 끝내려 했지만 계속해서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제 연장 시점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협상장 주변에선 협상 시한이 미국 워싱턴 시각 1일 오후 5시가 아닌 1일 자정, 즉 한국시간 2일 낮 1시까지라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2일 낮 1시가 넘어서까지 양측은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으면서 하얏트호텔 회담장 주변에서는 또 다른 해석이 제기됐다.

결국 오후 1시30분쯤 외신 등의 보도를 통해 협상 타결이 기정사실화됐고, 이날 오후 4시 협상 타결이 공식 발표됐다. 실제 최종 합의는 오후 1시 무렵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 미국, 협상 카드로 이용=이 같은 고무줄 시한에 대해 미국이 시한을 유리하게 활용했고 우리는 순진하게 당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우선 외교통상부의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즉 시한을 역산해 나온 날짜가 미국시간 4월 1일 공휴일이라면 당연히 공휴일이 끝난 4월 2일을 시한으로 보는 것이 원칙이고, 이를 앞당겨 3월 30일로 볼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민법에서도 만료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을 만료일로 하지 그 전날을 만료일로 하는 일은 없다"면서 "정부가 이를 몰랐다면 어이없는 일이고, 알고 그렇게 얘기했다면 협상 측면에서 적당히 이를 숨긴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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