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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한번 안 받은 '섬소녀들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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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 은지 공부법

① 영어는 MP3 어학기로 받아쓰기
② 30분 단위로 학습계획 실천
③ 모르는 내용은 인터넷 강의로 해결

◆ 재원이 공부법

① 영어는 문장 통째로 외우기
② 흥미 있는 과목에 집중
③ 궁금증이 생기면 곧바로 해결

국내 고교생들이 문턱이 높은 미국 명문대에 대거 합격했다. 강원도 민족사관고는 국제계열 81명, 서울 대원외고는 해외유학반 78명이 합격하는 기록을 세웠다. 역대 최대 규모다. 해외연수 경험 없이 하버드대 등 9개 대에 붙은 대원외고 김은지양과 스탠퍼드대 등 7개 대에 합격한 민족사관고 최재원양의 공부 방법과 희망을 들어봤다.

◆ 대원외고 김은지양="한국은 베이스 캠프일 뿐 세계 무대에서 뛰는 호텔리어가 될 거예요."

강화도 섬 소녀가 미국 하버드대에 합격했다. 2월 대원외고를 졸업한 김은지(18)양은 2일 하버드대에서 20만 달러의 장학금과 함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김양은 하버드대를 포함해 브라운대와 웨슬리안대, 웨즐리여대, 카네기멜런대 등 모두 9개 대학의 입학 자격을 따냈다.

인천시 강화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김양은 세계적인 호텔 경영인이 되는 것이 꿈이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김양은 2004년 대원외고 프랑스어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입학과 동시에 부모님이 강화도에서 운영하던 식당을 접으면서 가정 형편이 크게 기울었다. 학교 수업료를 내기도 빠듯해 학원은 꿈도 못 꾸었다. 외고 입학 직후에는 친구들과 너무 다른 환경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나 교내외 장학금으로 수업료를 대신한 김양은 3년간 학원 대신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며 아이비리그 꿈을 키웠다. 모르는 내용은 학교 선생님들에게 질문하고 인터넷 강의로 해결했다. 친구들의 학원 교재를 복사해 공부하고 30분 단위로 시간계획표를 짜서 실천했다. 스트레스는 사물놀이 동아리 활동으로 풀었다.

고3이 되자 미국 유학비가 걸림돌이 됐다. 김양의 부모는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유학 뒷바라지를 해주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김양이 나섰다. 그는 고3이던 지난해 5월 신라, 워커힐, 프라자, 인터컨티넨탈 등 7개 호텔 CEO에게 "나를 주식으로 생각하고 투자해 달라"며 편지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장학금은 받지 못했지만 호텔 CEO들의 격려에 힘을 얻었다.

스스럼없이 "학교 유학반에서 꼴등이었다"고 얘기하는 김양은 "강화도에서 대원외고로 유학올 때도 나는 바닥에 있었다. 미국 하버드에서도 나는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양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 코넬대 호텔경영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다. 최근까지 배낭여행비를 모으느라 쌀국숫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김양은 "앞으로도 '진실로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도와준다'는 말을 믿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 민족사관고 최재원양=민족사관고를 올해 졸업한 최재원(19)양은 최근 7개의 미국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최양은 스탠퍼드.매사추세츠공대(MIT).예일.프린스턴.UC버클리.미시간.UC샌디에이고 중 어디로 진학할지 고민 중이다.

경남 창원시에서 태어나 거제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최양에게는 중학교 때 3주 동안 뉴질랜드에 다녀온 것과 고교 때 미국 수학여행이 해외 체류 경험의 전부다. 민사고 입학시험 준비 때문에 토플 학원에 한 달 다닌 것 말고는 영어 사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하지만 졸업 성적은 최우등. 영어 실력은 "유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양은 고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영어 배치고사는 35점을 맞았다. "물리 과목을 중간에 포기하며 휴학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기억했다. 중학교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지만 주변에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워낙 많았던 것이다.

최양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연금술사'라는 책의 '가장 어두운 순간은 새벽이 오기 직전이다'라는 대목을 읽고 다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최양은 영어는 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문장을 통째로 외웠고, 물리는 선생님께 일일이 물어가며 원리를 익혔다.

공부뿐만 아니라 연극과 사진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철학에도 관심을 보여 고교생 세계철학대회(IPO)에 나가 동상을 받았다. 최양은 "철학 책을 읽고 사진을 공부하다 물질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대학에 진학해 초전도체 등 신소재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창원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부친 최성국(51)씨는 "재원이가 말을 하기 전부터 초등학교 교사인 엄마가 알아듣건 말건 사물에 대해 설명해준 것이 조기교육에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며 "영어 과외 한번 받지도 않고 이런 성적을 거둬 대견하다"고 말했다.

이상언.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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